“싱겁지만 맛있게” 특명… 10개국 돌며 400가지 메뉴 엄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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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D-73]선수촌 단체급식 어떻게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단에 제공될 요리들은 치열한 심사 과정을 거친다. 9월 열린 품평회에서 양의용 현대그린푸드 총괄셰프(오른쪽)가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에게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단에 제공될 요리들은 치열한 심사 과정을 거친다. 9월 열린 품평회에서 양의용 현대그린푸드 총괄셰프(오른쪽)가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관계자에게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제공
‘Simple and Boring(간단하고 심심하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측이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단체급식을 맡은 셰프들을 만나 내린 ‘의외의’ 특명이다. 조리를 복잡하게 하지 말고, 음식 간을 싱겁게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선수들이 먹는 음식은 칼로리가 중요할 것 같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염도다. 짠 음식을 먹으면 혈액 순환이 저해돼 몸의 회복 속도가 더뎌지기 때문이다. 특명을 받은 셰프들은 음식의 평균 염도를 보통 식사의 절반 정도로 낮췄다. 그 대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맛을 최대한 살렸다. 소금 대신 올리브오일을 넣어 짠맛을 내고, 설탕 대신 건포도를 넣는 식이다.

이번 대회가 평창과 강릉에서 열리는 만큼 평창은 신세계푸드가, 강릉은 현대그린푸드가 맡아서 선수단과 관계자들의 식사를 책임진다. 음식 가짓수와 식단은 똑같지만 조리법은 각사의 노하우로 만들기 때문에 맛 차이는 날 수 있다. 선수촌 뷔페 메뉴는 참가국 선수 비율과 선호도를 반영해 양식 57%, 그릴(고기류) 21%, 한식 10%, 아시안식 6%, 할랄·비건 6%로 구성했다.

24시간 뷔페식으로 제공되는 선수촌 메뉴는 아침 메뉴만 220가지가 제공된다. 점심과 저녁에는 350가지 요리가 제공된다. 칼로리 보충과 컨디션 관리를 위해 밤늦게 식당을 찾는 선수들을 위해 30개의 야식 메뉴도 따로 있다. 체중 조절을 해야 하는 선수들은 맛있는 뷔페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어 일부러 점심·저녁 식사 때를 피해 먹기도 한다.

케이터링(음식 출장 서비스) 업체로서는 음식 위생이 최우선이다. 선수가 상한 음식을 먹어 컨디션이 나빠지면 4년간 흘린 피땀이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뷔페인데도 스테이크, 파스타 등 주요 메뉴들은 선수들이 집게를 쓰지 않도록 했다. 조리원들이 접시에 떠서 준다. 최정용 신세계푸드 메뉴개발팀장은 “모든 메뉴에 영양성분, 알레르기 표시 등이 세세히 표기된다. 스포츠영양학에 기초해 철저한 메뉴 검증을 모두 마쳤다”고 말했다.

400가지 메뉴 중 선수들이 좋아하는 건 뭘까. 최 팀장은 “메뉴는 다양하지만 역대 올림픽 식단 자료를 받아 보니 피자, 파스타, 버거, 고기가 선수들이 실제 먹는 양의 70%를 차지했다. 이런 선호 메뉴는 특히 모든 역량을 집중해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올림픽 출전 선수들의 식사와 관련해 가장 큰 불만은 빵이었다. 서양 선수들에게 빵은 우리의 밥과 같은데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서는 늘 맛없는 빵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불만을 수렴해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는 평창, 강릉 선수촌 식당에 ‘베이킹 센터’를 열어 날마다 갓 구운 따끈한 빵을 선수들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선수단의 ‘밥심’을 책임지기 위해 1100여 명의 인력이 평창·강릉에 투입된다. 대학 조리학과 학생들도 손을 보탤 계획이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현지 신축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리거나, 방학 중이라 비어 있는 대학 기숙사를 개조해 숙소로 쓰기로 했다”고 전했다.

최정예 셰프들도 평창의 성공을 위해 합심했다. 올림픽 선수촌(강릉) 총괄 셰프인 양의용 셰프는 ‘국가대표 축구단 전문 셰프’로 24개국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방한했을 때 식사를 담당한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현대그린푸드 정창규 셰프는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2’와 미국 드라마 ‘센스8’ 촬영단이 방한했을 때 식사를 맡았다.

현대그린푸드는 메뉴 개발을 위해 1월 ‘올림픽 원정대’를 꾸려 6개월간 10개국에 총 100여 차례 출장을 다녔다. 이들의 누적 비행 거리는 20만 km, 지구 5바퀴에 달한다. 신세계푸드도 국가의 주요한 행사를 전담했던 특급호텔 출신 30여 명의 셰프가 모여 조리법을 연구했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전 세계 식문화를 파악하기 위해 50여 권의 책을 사서 공부하고 스포츠영양학도 학습하며 최상의 메뉴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개최국인 만큼 특화된 한식 요리도 눈길을 끈다. 대표 한식인 비빔밥은 물론이고 잔칫날에 대접하는 잔치국수, 강원도 식재료를 활용한 시래기 도루묵탕, 메밀묵 등을 선보인다. 업체들은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국산 대신 브라질산 닭고기 거래처까지 확보했다. 북한 선수단 참석에 대비해 최근에는 북한 음식도 추가로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평창올림픽#음식#간#선수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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