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잡는데 세무조사까지… 집 사는 사람 자금출처도 검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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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12년만에 다주택자 세무조사

“투기 근절” 손잡은 경제부총리-국토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악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부동산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필요에 따라 추가 조치 시행을 통해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투기 근절” 손잡은 경제부총리-국토장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악수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 부총리는 이날 “(부동산 대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필요에 따라 추가 조치 시행을 통해 투기를 근절하겠다”고 밝혔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20대 후반 남성인 A 씨는 별다른 소득 없이 지난해까지 서울에 아파트 3채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10억 원대 아파트 1채를 추가로 사들이면서 4주택 보유자가 됐다.

B 씨는 그동안 전북 전주시 혁신도시에서 아파트 분양권 12개를 사고팔기를 반복했다. 이곳은 고액의 웃돈(프리미엄)이 형성된 지역이지만 계약 금액을 낮춘 ‘다운계약서’를 쓰면서 400만 원만 세금으로 냈다.

국세청이 9일 부동산 투기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286명은 이들처럼 자금 출처를 감추거나 세금 신고를 회피하다가 조사망에 걸려들었다.

○ 확실한 투기 의혹 대상자만 골랐다

눈에 띄는 조사 대상은 가격을 낮춰 신고하는 속칭 ‘다운계약서’ 작성 의심자들이다. 이들은 웃돈이 평균 4억 원에 이르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분양권을 팔면서 양도차익이 한 푼도 없었다고 신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동산 중개업자도 조사 대상에 포함돼 눈길을 끈다. 국세청은 이들이 다운계약서 작성에서부터 불법전매 유도, 집값 상승 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이번 조사 대상이 된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중개업소 3곳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명의로 아파트와 상가 30곳을 사고팔았지만 3년간 1000만 원의 양도차익을 올렸다고 신고했다.

이런 점에서 2700명 넘게 세무조사를 실시했던 2005년 ‘8·31부동산대책’ 세무조사보다 규모가 훨씬 작은데도 이번 세무조사가 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 관행처럼 여겨졌던 편법 증여나 다운계약서 작성 등이 세무조사의 주 타깃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매매가 10억 원 이상 고가 주택이 밀집한 서울 강남 지역이다. 서초구 반포동 G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고액의 전세보증금을 부모가 대신 내준 뒤 계약이 끝나면 자녀가 돌려받는 편법 증여가 그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 K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개포주공1단지 등에서 급매물이 나왔지만 세무조사 내용이 발표되자 매입 계획을 모두 접었다”고 전했다.

○ 정치적 목적의 세무조사는 위험


이번 국세청의 조치에 대해 부동산 가격 안정이라는 정부 정책 목표를 위해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건 ‘무리한 법 집행’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세무학회장을 지낸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장은 “일반적으로 세무조사는 정해진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는데 갑자기 부동산 가격 안정 차원에서 286명의 세무조사를 하는 것은 과세권 남용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번 세무조사 대상자들이 세금탈루 혐의가 있었다면 이미 세무조사를 시행했어야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세청은 앞으로 부동산 거래 감시를 강화할 방침이다. 우선 8·2대책에 따라 국토교통부에서 투기과열지구 내 3억 원 이상 주택 구입자의 자금조달계획서를 받아 자금 출처를 검증할 계획이다.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향후 부동산 가격을 보면서 추가 (세무)조사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보유세 인상 카드 만지작

한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이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2부동산대책 후속 조치로 ‘보유세 인상’ 카드를 언급해 파장이 일고 있다.

김 의장은 “대책을 발표한 지 일주일 정도밖에 안 돼 다른 대책을 얘기하는 것은 이르다”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는 분명하고, 시장 안정화와 주거 안정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런 목표에 맞는 정책이라면 검토해볼 수 있다”며 추가 대책 발표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의장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필요하면 보유세 인상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것인가’라는 추가 질문에도 “지금 이야기하기는 매우 이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렇다)”라고 말했다. 특히 김 의장은 “지금 정부의 다주택자 투기 억제 기조는 단기 대응이 아니라 지속해서 유지할 방향”이라며 “앞으로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든지, 주택을 처분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란 주문도 했다.

세종=박재명 jmpark@donga.com / 천호성·박성진 기자
#세무조사#보유세#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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