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매매 투자자들은 불나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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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제한 없어 투기꾼 활개
‘웨이포트’ 첫날 급등 후 폭락 등… 올해 9개 종목 평균수익률 ―90%
전문가 “신규투자 제한 등 필요”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중국 기업 웨이포트가 자진 상장 폐지를 결정하고 이달 14일부터 정리매매에 들어갔다. 정리매매 직전 주당 3020원이었던 주가는 정리매매 첫날 장중 5400원까지 오르며 78.8% 급등했다. 급등락을 반복하던 주가는 정리매매 나흘째인 19일 178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인터넷 종목 토론 게시판에는 “5400원에 1억 원어치 매수했는데 어떡하죠?”라는 글부터 “오늘은 20% 먹고 빠집니다” 등의 글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정리매매는 거래소에 상장된 종목이 상장 폐지 결정을 받으면 7거래일 동안 투자자가 갖고 있던 주식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 기간에는 상·하한가 제한이 없고 거래는 30분마다 한 번씩, 하루 14차례 이뤄진다. 상장 폐지가 되고 나면 휴지조각이 될 주식이니 싼값에 거래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가격제한이 없다는 점 때문에 이상급등 현상이 반복된다. 정리매매만 노려 투기하는 ‘정매꾼’이 있을 정도다.

통계를 보면 정리매매 기간 투자자가 수익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코스피·코스닥시장에서 상장 폐지 운명을 맞이한 9개 종목의 정리매매 기간 수익률은 평균 ―90.1%였다. 정리매매 직전에 주당 780원이던 한진해운 주가는 정리매매 기간에 등락을 반복하다 결국 98.5% 하락한 12원에 거래를 마치고 증시에서 사라졌다. 급등락하는 장세에 누군가는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지만 평균 수익률이 ―90%인 시장에서 대다수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리매매 투자자들은 곧 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빛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떼에 비유되곤 한다.

정리매매 제도가 투기에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리매매 장에서 시세 조종을 하는 작전세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장외시장을 활성화해 상장 폐지 이후 주식의 유통 통로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또 “정리매매는 초고위험 투자인 만큼 신규 투자자의 거래를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정리매매#투자#투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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