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노지현]“정신과 약, 먹고 있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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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현 사회부 기자
노지현 사회부 기자
감기약이나 고혈압 약을 복용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신과 약을 복용한다고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정신과’라는 말을 꺼냈을 때 받을 편견의 시선을 모두 알기 때문이다.

경찰은 5월 발생한 서울 강남 화장실 살인사건의 범인이 여성 혐오자는 아니며 조현병 환자였다고 결론지었다. 피의자가 조사를 받는 2개월 동안 조현병 환자 보호자들은 ‘조현병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가족이 환자를 집 밖으로 못 나가게 막아야 한다’는 악플들에 마음 졸여야 했다.

최근 만난 조현병 환자 보호자 모임인 ‘아름다운 동행’ 회원들은 “병보다 일반인의 편견이 더 무섭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름다운 동행’은 2007년 ‘정신분열증 병명 개정을 위한 서명서’를 의료계에 보냈고, 4년에 걸친 노력 끝에 ‘조현병’으로 개칭했다.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처럼 신경계나 정신의 튜닝이 잘 안 되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을 썼던 일본 역시 2002년 병명을 ‘통합실조증(統合失調症)’으로 바꿨다. 정신분열이라는 말이 오히려 환자들의 조기 치료를 막고 편견을 확산시킨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진료를 주기적으로 받는 국내 조현병 환자는 연간 10만∼11만 명이다. 그러나 정신건강의학계에서는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포기한 경우를 합치면 50만 명쯤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현병의 실체를 놓고 그동안 꾸준히 연구가 이뤄졌다. 그 결과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비에 문제가 생겼다는 점을 밝혀냈다. 신약도 개발돼 2000년 이후에는 하루 1, 2알씩 약을 복용하면 일상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게 됐다. 약은 신경전달물질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조현병 환자 카페에는 전문직으로 일하는 회원도 적지 않다. 전기회사에서 근무하거나 엔지니어로 평범하게 결혼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그들은 “매일 약을 먹는다”고 주변에 밝힐 수 없을 뿐이다.

보호자들은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다”고 가슴 아파 했다. 인종, 국가에 상관없이 유병률은 1%. 100명 중 1명꼴로 질환을 앓는다. 환자 70∼80%가 10대 후반에서 20대에 발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뇌에 큰 영향을 줘 ‘현(絃)’이 끊긴 것이다. 평범하게 군대도 다녀온 아들이 어느 날부터 글자 읽는 걸 어려워하더니 방 안에 자꾸 틀어박히다 병이 깊어진 경우도 있다. 조기 치료가 완치의 성패를 좌우하지만 여전히 환자와 보호자는 병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도 지역별로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만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6개월 넘게 기다려야 한다.

살인의 원인을 ‘정신병’ 탓으로 돌리기는 쉽다. ‘당뇨병 환자가 사람을 죽였다’거나 ‘아무런 질병도 없는 사람이 죽였다’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인정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무신경한 발표 문구나 선정적인 보도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문턱에서 발길을 돌리는 환자들도 분명히 있다.
 
노지현 사회부 기자 isityou@donga.com
#조현병#정신과#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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