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2 녹번동 사고 날라…불안한 성수동 주민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4일 2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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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성수동1가 김재성 씨(64)의 다세대주택은 겉보기에도 뚜렷이 기울어져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가 방문을 열었더니 자동문처럼 저절로 닫혀 버렸다. 바닥에 음료수 캔을 눕혀놓자 방구석으로 굴러갔다. 건물 1층 창틀은 심하게 틀어져 아예 창문을 열 수 없었다. 건물 외벽과 담장, 마당 바닥은 이미 곳곳이 길게 갈라져 있었다.

김 씨의 건물이 남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1월. 건물 남쪽에 지하 4층, 지상 15층 지식산업센터를 짓기 위한 기초공사가 시작되면서다. 2개월 뒤 시공회사 측이 김 씨 주택 동쪽 공터에 정화조를 설치하기 위해 땅을 파면서 김 씨 건물은 동쪽으로도 기울기 시작했다.
신축공사에 따른 피해는 주변의 다른 주택에서도 나타났다. 지식산업센터 건물에 인접한 16개 건물에선 크고 작은 균열과 시멘트로 보강한 흔적이 보였다. 시공사가 협상에 나섰지만 준공을 앞두고 아직도 인근 7개 건물 주인들과 보상 문제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 씨 건물에는 6가구가 살았는데 2가구가 위험하다며 집을 비웠다.

1일 김 씨 건물을 돌아본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주변 신축공사로 인한 건물 기울어짐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며 “기울기나 균열 상태로 볼 때 해빙기를 앞두고 반드시 보강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공사가 안전진단업체에 의뢰해 2014년 2월 내놓은 보고서에는 기울기나 균열 등에 대한 위험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지 않았다. 안 교수는 “안전진단 이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상태가 악화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시공사 측은 “(23년 된 김 씨의) 건물이 노후해 온전히 신축공사로 인한 피해로 보기 어려우며 이미 지반보강 작업 등을 진행해 지반이 안정된 상태”라고 반박했다.

공사가 김 씨의 집에 영향을 미친 시점에 대해서도 양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김 씨는 “인접지사전조사보고서 자체가 철거가 시작된 2013년 8월이 아니라 2013년 12월 조사해 작성된 내용”이라며 “그 때는 이미 건물이 일부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본보 확인 결과 시공사 측은 김 씨 측의 민원이 지속되자 공사 시작 뒤 사전 조사를 진행했다. 인접건물에 대한 사전조사는 공사장 인·허가 과정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인접지 안전에 대한 사전조사가 아예 안 이뤄지거나 뒤늦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주민들은 건물의 최초 상태를 입증할 수 없어 법적 분쟁으로 갈 경우 불리할 수 있다. 김 씨는 2014년 1월 서울동부지법에 안전 문제 및 일조권 침해 등을 이유로 건축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신청했지만 하지만 같은 해 6월 법원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피해사실을 충분히 소명하기 부족하다”며 이를 기각했다.

행정기관의 소극적인 대응도 분쟁을 키웠다. 주민들은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지만 성동구는 “민사 문제이므로 당사자 간에 협의하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런 사이 건물은 준공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김 씨의 피해 민원은 준공 허가를 내리는데 고려사항이 아니다”라며 준공허가 강행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 은평구 녹번동 다세대주택 붕괴 위기로 100여 명이 대피한 사건 이후에도 신축공사장 옆 안전사고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철저한 사전조사가 선행된다면 건설업체의 ‘무사안일’ 관행을 끊고 주변 안전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시공사가 안전진단업체에 직접 안전진단을 의뢰하는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나경준 한국시설물안전진단협회 감사는 “공사기간 단축만 우선 생각하다 보니 ‘일단 짓고 문제가 생기면 나중에 처리하자’는 생각이 만연하다”며 “제도적으로 안전장치를 확실히 갖추고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감시 감독을 제대로 해야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김동혁기자 h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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