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서 재검토’ 무시하고 의결… “특조위 결과 누가 믿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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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당일 대통령 행적 조사’ 파장

“이번 결정으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특정 정파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임을 또 한번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누가 특조위의 조사 결과를 믿겠습니까.”

23일 세월호 특조위가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을 포함한 ‘청와대 세월호 대응 조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하자 한 특조위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당초 새누리당 추천 위원들은 세월호 특조위가 이번 전원위원회에서 조사 개시 결정까지는 내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박 대통령의 행적 조사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이미 사회 여론은 양극으로 갈라졌다. 여기에 특조위 내부 ‘중립파’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결국 조사 안건이 통과된 것이다.

○ “소위원회에서 다시 검토” 의견 묵살

이번 조사는 9월 29일 접수된 세월호 유가족 박종대 씨의 조사 신청에서 비롯됐다. 박 씨는 신청서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조사해 달라”고 썼다. 한 특조위 관계자는 “박 씨가 가해자를 ‘박근혜’로 명시하고, 첫 번째 조사 내용으로 ‘박 대통령의 7시간을 조사해 달라’고 적었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달 진실규명소위원회를 열고 해당 조사 안건을 논의했다. 당시 위원 간의 합의로 ‘대통령 행적’ 등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빠진 채, 세월호 참사 당시의 △대통령 및 청와대 지시사항 △정부부처의 이행사항 △정부부처의 보고사항 △책임자 위법사항 △사고 수습 ‘컨트롤타워’ 조사 등 5개 안건만 상임위원회에 올렸다.

중도 퇴장하는 與추천위원 23일 세월호 특조위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황전원 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황 위원 등 여당 추천 특조위원 4명은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제외한 부분만 
조사하자는 수정안을 냈다가 부결되자 중도 퇴장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중도 퇴장하는 與추천위원 23일 세월호 특조위 전원위원회에 참석한 황전원 위원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황 위원 등 여당 추천 특조위원 4명은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을 제외한 부분만 조사하자는 수정안을 냈다가 부결되자 중도 퇴장했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그때부터 이견이 발생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및 유가족이 추천한 위원들은 “대통령의 7시간은 당연히 조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8일 상임위에서 이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새누리당 추천)이 항의 차원에서 퇴장했지만 상임위는 안건을 결의기구인 전원위원회에 회부했다.

23일 열린 전원위원회는 특조위 안의 ‘이념 구도’를 뚜렷이 보여줬다. 총 17명의 특조위원 중 새누리당 추천 위원 4명이 해 13명이 표결했다. 이 중 9명이 조사 개시에 찬성했다. 반대한 사람은 이 부위원장과 김선혜 상임위원(대법원), 이상철 위원(대법원), 이호중 위원(유가족 추천) 등이다.

이 부위원장은 “대통령 행적과 세월호 침몰 사이에 연관관계가 없는 만큼 이번 조사는 ‘정치 논리’로 결정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립’ 입장으로 평가되는 대법원 추천 위원들은 “소위에서 조사 대상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이들은 조사 개시에 찬성하지 않았다.

유가족이 추천한 이호중 위원은 “대통령 행적 조사를 논란으로 남겨두고 의결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행적 조사를 명문화하자는 취지에서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및 유가족 측 위원들은 ‘대통령 조사’ 의지를 다시 한번 보였다. 새정치연합이 추천한 류희인 위원은 “대통령의 당일 행적이 어땠으며 7시간 동안 어떻게 상황을 보고받고 인식했는지를 아는 것은 이 사건 규명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 특조위발 보혁 갈등 불가피

이번 결정으로 우리 사회 안의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이 다시 표면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보수 측에서는 이날 “특조위를 해산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가 박 대통령을 조사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는 데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지속적으로 정치적 중립을 상실하는 등 존재 이유를 상실한 특조위의 해체까지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중구 특조위 사무실 앞에서는 특조위 해체를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특조위가 청와대 조사 개시를 결정한 만큼 언제 조사를 시작할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특조위에 따르면 전원위원회의 조사 개시 결정은 내린 순간부터 효력을 지닌다. 진술을 받고 사실조사에 나서는 한편 동행명령도 내릴 수 있어 준수사기관의 성격을 띤다. 특조위 관계자는 “12월까지는 특조위 조사 일정이 가득 찬 상태”라며 “내년부터 관련 조사를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회 농해수위는 24일 이석태 위원장과 이헌 부위원장을 불러 이번 조사 개시 결정과 세월호 특조위 예산안 등을 추궁할 예정이라 또 한번 여야 충돌이 예상된다.

박재명 jmpark@donga.com·권오혁 기자
#특별조사위원회#세월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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