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 필진 “정부-정치권의 無능력 無비전 無전략이 개혁 실종 초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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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부문 구조개혁 진단… 동아광장 필진 좌담회

동아광장 필진은 ‘4대 부문 구조개혁에 성공하려면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의 현주소를 알게 됐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동아광장 필진은 ‘4대 부문 구조개혁에 성공하려면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의 현주소를 알게 됐기 때문에 이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했다. 왼쪽부터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정부는 연초에 올해를 4대 부문(공공 노동 교육 금융) 구조 개혁을 완수할 골든타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6개월째인 현재 제대로 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을 뿐 나머지 부문은 추진력을 잃다시피 했다. 본보는 5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동아광장 필진 좌담회를 열어 구조 개혁의 현황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참석했다. 》

공공개혁 목표-방향 불명확

―4대 부문 중에서 정부는 공공과 노동에 집중한 듯하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공 개혁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공공 개혁의 목적과 방향이 제대로 설명된 적이 없다. 공공성과 효율성의 조화라든가 방만 경영 문제 등이 잠깐 나오다 묻혀 버리고 후속 작업이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또 지방 공기업 문제도 상당히 심각하다. 경기도만 하더라도 각 시에 시설공단이 있다. 국민의 혈세를 원칙과 기준 없이 경쟁하듯이 쓰고 있다. 국민이 체감하는 핫이슈에 대한 정확한 의제 설정이 안 됐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공공 개혁은 공기업 개혁 훨씬 이상이다. 그런데 공기업 문제로 좁혔다. 공기업 개혁조차도 주인 찾아주기로 갔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경쟁이다. 하지만 한국의 문제는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온통 독과점 구조라는 점이다. 경쟁시장이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서 공기업을 잘게 쪼개 던져야 한다. 이때 청년에게 기회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민간의 창의와 열정이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런 키워드를 공기업 개혁과 연결해야 했다. 공기업 개혁의 본질을 직시하지 못했고 곁가지도 못 잡은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민 쪽에서 보면 공공성과 효율성이 어느 정도 균형을 못 잡으면 그 정도 서비스를 그 가격에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누군가는 확실히 설명해줘야 한다. 공공 개혁은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란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거의 없다. 제로섬 게임에서 결국 민영화, 즉 주인 찾기 논리로 가다 보면 약자가 손해 보고 가진 자는 우위에 선다는 그동안의 프레임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공공부문도 정당성이 있고 공익성을 위한 정부의 역할도 있는데 이런 점이 논의되지 않았다. 공개적이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고 시민의 참여도 보장돼야 한다. 공공부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모든 가치가 논의돼야 하는데 필요에 따라 부분적인 것만 얘기하니까 제대로 된 공공성 확보가 안 된 것이다.

▽박=공공부문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문제다. 다수의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스스로를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효율성 있게 업무를 수행하라고 요구받지만 몸은 여전히 공무원이다. 대우받고 싶어 하고 신분 보장 등도 다 갖고 싶어 한다. 공공 개혁은 이런 것을 깨자는 것이다. 정부가 이걸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니 방만 경영이니 고임금이니 하는 곁가지의 자극적인 내용이 나오고 당사자들이 반발하는 것이다.

노동개혁 범위 너무 넓혀 무리수

―노동시장 구조 개혁도 3월 말 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박=1980년대 네덜란드의 노사정 대타협은 먼저 노와 사가 임금 동결과 근로시간 단축을 합의하고, 이어 정부가 공무원 임금 동결로 고통 분담을 약속하면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노사정 간에 신뢰가 쌓였다. 하지만 국내 노동 개혁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정규직 과보호 문제였다. 동시에 공무원연금 개혁이 진행됐다. 공공기관 사람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보면서 ‘공무원은 연금을 보장받으면서 우리만 언제든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희생될 수 있다’고 봤다. 한국노총은 이런 불안을 조직화해 방어하기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은 별도로 떼어내 한쪽을 먼저 진행하면서 다른 한쪽을 설득할 수 있어야 했다. 전략도, 비전도, 능력도 없으면서 개혁하겠다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이=네덜란드 노조위원장은 교섭을 한 뒤 산하 노조들에 명령하고 동의를 끌어낼 수 있는 대표권과 권한, 권력이 있다. 이게 필라 시스템(다층 조합주의)이다. 하지만 우리는 노조위원장한테 이런 힘이 없다. 그러다 보니 강성 노조일수록 자기 이해관계에 충실하게 이끌어 가지만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같은 사람들은 적서 차별 같은 신분 차별을 받는 것이다.

▽박=노동시장 개혁은 역사적으로 오일쇼크나 장기 불황처럼 경제 자체가 위기이거나 고용 없는 성장처럼 노동시장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생겼을 때 추진됐다. 1990년대 들어와서는 경제 위기와 노동시장 위기가 동전의 양면처럼 같이 진행된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은 일상이 됐고 덴마크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화두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인 이중구조 문제와 청년 일자리, 고령인구 문제 등을 망라해 범위를 너무 넓혀 버렸다. 노동계는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지도력도 없어 설득에 한계가 있는데, 정부는 의욕 과잉으로 이 기회에 다 해버리자고 나섰다. 시간마저 짧게 설정했다. 이러다 보니 뭐 하나 해결되는 것이 없다. 이 점이 노동시장 개혁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최=우리가 직면할 세상에 대해 아무도 솔직하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더 많은 괜찮은 일자리가 기대만큼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용 유연성이 생긴다 한들 사람들이 따라주겠는가. 대부분은 여전히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익숙한 세상이 끝났다. ‘괜찮을 것이다’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김=문제는 한국적 특수성이다. 한국은 표준 자체가 잘못돼 있다. 공공부문 종사자들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2배 이상을 받고 9급 1호봉과 6급 30호봉이 3배 차이 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이 지나치게 특수하다. 다른 나라가 200만 명을 고용할 돈으로 우리는 100만 명밖에 고용하지 못한다. 여기서 엄청난 격차 내지는 절벽이 생긴다. 귀족과 천민이 갈린다. 기업 편에서 볼 때 고용 리스크가 너무 크다. 대형 제조업체들을 봐도 해고는 살인이다. 살인이 맞으면 채용을 안 하고 구조조정을 안 해야 한다. 제정신이 있는 기업이라면 한국에서 함부로 고용하지 못한다. 투자도 못한다. 그 핵심은 과잉 팽창된 표준화다. 이건 공공부문에서 가장 심하다.

▽박=한국의 임금체계가 세계에서 가장 낙후돼 있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1년 차 직원과 25년 차 직원의 임금 차이가 1.3배다. 독일은 1.9배다. 대부분의 나라가 2배 남짓이다. 한국은 3배 이상이다. 차이가 이렇게 큰데 3개월 만에 해법을 내라는 것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일을 설정해놓고 강제한 것이다.

▽이=우리의 구조조정이나 개혁 문제는 호환성이 깨져 있다는 것이다. 1970, 80년대는 군대식으로 제도들 간의 호환성이 매우 높았다. 1997년에 이게 깨졌다. 몸통은 평생직장, 머리는 시장자유주의, 다리는 유럽식 노사정 체제로 갖다 붙이다 보니 다 삐걱거린다. 제도적 호환성과 일관성을 지금 시점에서 경장(更張)해야 한다.

30세에 진로 바꾸는 교육현실

―교육 개혁은 기존 방식의 개선에 그친다는 느낌이다.

▽이=과거식의 팽창을 전제로 한 교육시스템이 기대를 저버린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학 진학률이 지금 고교 졸업자의 80%를 넘었다. 세계 어느 나라도 대졸자로만 구성된 노동시장에서 완벽하게 고용을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육에서는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팅(Sorting)도 중요하다. 적절한 시점에 뭘 하는 게 좋겠다는 교통정리 기능을 우리는 포기했다. 중고교 입시를 굉장히 비난했지만 그 나름의 합리성이 있었다. 그때는 학문적 소양이 없는 학생에게 손을 놀리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라고 얘기해줬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 희망적으로 말해준다. 뭐든지 할 수 있다고 하니 모두 고교에 가고 다 대학 보낸다. 30세가 다 된 시점에 그중 절반이 ‘나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되돌릴 수 없다.

▽박=4년제 대학 나와서 다시 전문대 들어간다.

▽이=그게 얼마나 시행착오인가.

▽박=대졸자들이 실제 기업 현장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정부가 문과 대학생들을 위한 기술자격을 학교가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또 일과 학습 병행제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최=성장률이 높으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설명이 가능한 시대가 끝났다. 국민은 성장률에 둔감한데 정부 당국자만 성장률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성장은 중요하다. 성장률을 높이는 투입과 기술 중 우리가 안 되는 것이 여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일본 정도만 여성이 경제활동을 해도 성장률이 1% 올라간다. 또 일자리는 서비스업에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비스업이 다 약하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부족하니 일본이나 중국과 연계해 케이팝, 바이오 등으로 시너지를 내야 한다.

▽이=5·31교육개혁 때 준칙주의를 도입해 대학 설립 문턱을 낮췄다. 그렇게 열어놓고 지금은 관료적인 규칙으로 정리하려고 한다. 교육부가 기본적으로 모든 대학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처음 단추를 잘못 채웠는데 푸는 것도 잘못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 책임지는 리더십 보여야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면….

▽박=정치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하다.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는 설득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자신감도, 용기도 없다. 이해관계자들을 모아놓고 정작 자신들은 숨는다. 여기에 야당이 가세하고 결국 포퓰리즘으로 전락한다.

▽김=모든 개혁은 기득권의 양보 조정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51 대 49(18대 대선의 여야 득표율은 52% 대 48%)의 구조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점점 교착상태가 됐다. 한국의 1번 킹핀(문제의 핵심)은 무조건 정치 개혁이다.

▽최=개혁은 기존의 이해관계 구조를 바꾸고 설득도 해야 하니까 혁명보다 힘들 수 있다. 그래서 개혁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현재 상태보다 더 나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래가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최악이 된다. 절벽으로 떨어진다.

▽김=진보든 보수든 우리처럼 연대성과 공공성을 팽개친 수구적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개인과 기업은 워낙 창의적이었고 해외로 나갔다. 지금까지 모순이 폭발하지 않은 이유다.

▽박=노동 개혁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처절한 민낯을 보여줬다. ‘우리가 정말 개혁할 능력이 안 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서 희망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정리=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공공 개혁#공무원 연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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