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길이 아닌 곳 가지 말라면서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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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주제는 ‘정직’]<47>국립공원 일탈행위 3종세트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 “집에서 게임이나 하겠다”며 한사코 버티던 초등학생 아들을 기어코 산으로 데려갔는데…. 낭패를 보고 말았다. ‘비법정 탐방로(샛길)’를 이용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단속 직원에게 걸리고 만 것.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데려왔는데, 망신도 이런 망신이 있나….

지난해 가을 아들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던 신모 씨(46)는 하산 길에 샛길을 택했다. 국립공원구역의 경관과 생태계 보호를 위해 정해진 탐방로 이외의 샛길은 이용이 금지돼 있다. 국립공원의 살을 파먹는 샛길 이용은 대표적인 공원 내 금지행위 중 하나다. 하지만 신 씨는 “좀 더 빠른 길이 있다”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아들의 손을 이끌고 샛길로 들어섰다. 신 씨의 의기양양은 오래가지 못했다. 샛길로 접어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등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단속 직원이었다.

“샛길인 줄 몰랐다”며 발뺌했지만 소용없었다. 샛길이 시작되는 곳에 진입금지 안내 표지판이 서 있었다. 샛길로 들어선 뒤로도 초반부에는 10m 간격으로 샛길 이용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2개나 걸려 있었다. 이런 사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단속 직원 앞에서 신 씨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들과 눈을 맞출 수도 없었다. 과태료 10만 원 처분을 받고, 정규 탐방로로 다시 돌아와 산을 내려와야 했다.

신 씨처럼 전국의 국립공원구역 내에서 샛길을 이용하다 적발된 건수가 지난 한 해에만 1100건에 이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샛길을 이용했는지 북한산 통일교∼도봉대피소∼신선대 구간은 샛길 길이가 전체 정규 탐방로(3.12km)의 3배에 가까운 8.8km나 된다. 북한산에서 일명 ‘신(神)발’ 잘 받는 곳으로 알려진 보현봉 형제봉 같은 국립공원 내 특별보호구역에도 탐방객들의 불법 진입은 비켜가지 않는다. 지난해에만 142건이 단속됐다.

그날 이후 신 씨는 샛길을 이용하지 않는다.

“다시는 아빠 따라 산에 가지 않겠다”며 울먹거리던 아들을 생각하면 샛길은 쳐다보기도 싫다는 게 그의 얘기다. 신 씨는 “‘남들 다 가는 길인데 나 하나쯤 더 다녀도 괜찮겠지’ 했던 생각이 이제는 싹 사라졌다”고 했다. 요즘 그는 인터넷의 산악동호회 게시판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는 글이 종종 올라오면 ‘개척했다는 그 길, 불법 샛길입니다’라는 댓글을 달 정도로 샛길 이용 방지 전도사가 됐다.

샛길 출입과 함께 국립공원 내 ‘부(不)정직 3종 세트’로 불리는 취사와 흡연도 지난해 각각 364건, 287건이 단속됐다. 이런 부정직 행위 단속을 위해 북한산에서만 평일 하루 40∼50명, 주말과 공휴일에는 120명의 공원 사무소 직원이 동원된다. 부정직 행위가 없다면 탐방객들을 위한 공원 안내나 구조 활동에 나설 수 있는 인력이다. 지리산과 설악산, 오대산 등 9개 국립공원에서는 단속 인력이 모자라 아예 샛길 곳곳에 대당 1000만 원이나 하는 폐쇄회로(CC)TV 24대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샛길 이용자가 나타나면 ‘정규 탐방로를 이용해 달라’는 안내 방송을 하고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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