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선전을 통해 본 중국의 개혁개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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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경제성장으로 개혁개방의 상징 된 선전
다양한 국제학술대회 열어 정부-학계-언론 힘 모아 中 나가야 할 길 철학적 모색
선진 문화도시 향해 도약하는 그들의 기세 부럽고 두렵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며칠 전인 23일부터 25일까지 중국 선전(深圳)에 다녀왔다. 선전대 국학연구소에서 ‘경전과 경학 그리고 유가 사상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주제로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는데, 중국을 포함한 10여 개국에서 학자 130여 명이 참석하고 논문 110여 편이 발표된 대형 회의였다. 국내외 학자들에게는 항공료 등의 교통비, 5성급 호텔에서의 숙식이 제공됐다. 대학의 한 연구소에서 그런 규모의 예산을 쓰는 기획을 하고, 또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는 일을 벌써 4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규모의 학술행사가 단지 선전대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 전역에서 다른 내용으로 적지 않게 개최된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관심이 가는 부분은 이런 학술행사가 열리면 그 지역 언론에서 어떤 학술행사가 열렸다는 사실을 단신으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는 무엇이었으며, 그 주제가 현재 중국 사회에 제기하는 의미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 있는 논문이 발표됐는가 하는 점들을 심층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학술이 직접적으로 민간과 소통된다는 증거다. 중국인들이 철학적 레벨에서 자신들이 걸어야 할 길의 방향을 감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부러웠다.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1978년 중국공산당 3중 전회에서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을 표방하면서 시작되고, 바로 그 2년 후에 선전을 포함한 4개의 경제특구가 지정되면서 구체적인 발걸음을 내디딘다. 특히 개혁개방의 총 설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1월에서 2월 사이에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함으로써 개혁개방을 더욱 과감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데, 이때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표어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때도 선전이 주요 방문지였다. 이처럼 선전은 중국의 개혁개방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도시인 것이다.

중국에 개혁개방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바로 ‘시장경제’, 즉 경제발전이다. 다시 말하면, 선전은 중국의 현대적 경제발전 과정을 매우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도시인 것이다. 선전은 그래서 현대 중국을 읽는 주요 교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도시에서 철학적 논의가 활발하게 시작됐다.

우리 주위에는 가끔 “우물쭈물하다가는 곧 중국에 추월당한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데, 시절 모르는 한가한 소리다. 선전이나 상하이(上海)에 가 보시라. 서둘러 중국을 따라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객관적 시각을 상실한 사람이 분명하다. 경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도시관리나 질서의식이나 문화수준은 아직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왜? 사실은 그런 것들도 우리보다 이미 나아졌기 때문이다. 선전에 가보면 알 수 있다. 선전은 경제발전의 상징 도시이지만, 문화력으로 한 단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서로 힘을 합쳐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문화는 기실 세계와 삶이 가장 높은 차원으로 구현되는 일이다. 문화적 시선은 전술적 차원을 넘어서 전략적 차원으로 개안할 수 있게 해준다. 철학이니 문화니 인문학이니 예술이니 과학이니 하는 것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더 높은 차원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움직이는 시선의 작동으로 태어나는 것들이 창의성이고 창조력이고 선도력이다. 선진하는 능력의 원천인 것이다. 선진국에서 만든 길을 따라가면서 경제를 일구어 어느 정도의 부를 누리는 단계가 중진국이다. 그런데 이 중진국이 나름대로 이룬 경제적 성취를 한 단계 상승시켜 새로운 경제적 구조, 즉 선도력을 가진 경제력으로 도약시키지 못하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데, 이 우왕좌왕은 정치나 교육이나 사회 등의 모든 분야에서 극단적인 갈등과 혼란으로 노정된다. 비효율만 양산한다. 투명한 벽 앞에 서서 길을 찾지 못하고 이리 부딪치고 저리 부딪치는 형국. 지금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자, 이제 철학이나 문화가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됐다.

우리는 어떠한가.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정해진 틀에서 하는 반성이 아니라, 전술적 차원에서의 궁리가 아니라 이제는 철학적이고 문화적인 전략적 차원으로 시선이 상승해야 한다. 부럽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 채 귀국길에 올랐다. 선전공항은 공항이 아니라 예술품이었다. 그런 수준의 구조물을 들락거리며 느끼는 승화된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 낼 사회는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공항 내부에 세워진 구호에 그 상승의 기운이 충분히 드러났다. ‘문화중국, 창의선전(深圳).’ 놀람은 여기서 마무리됐고 서울로 머리를 돌린 나의 생각은 수만 갈래로 복잡해졌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중국#개혁개방#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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