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낡아 부스러지는 美의회도서관 北 문서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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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7월 15일과 8월 5일 두 차례 미국 워싱턴 의회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아시아 서고에서 20년 가까이 일해 온 재미교포인 소냐 리 수석사서가 6·25전쟁 전후 북한 희귀 자료 여러 점을 들고 나와 친절하게 소개해 주었다.

북한 건국 전인 1947년 2월 28일 발행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 잡지 ‘근로자’ 3·4호에는 당시 소련파의 거물 허가이(許哥而)가 쓴 ‘당 정치사업에 대한 제 과업’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제3차 중앙위원회 보고문을 전제한 것이었다. 건국 직후인 1948년 11월 20일 발행된 잡지 ‘인민’은 온통 처음부터 끝까지 소련을 찬양하는 특집호였다.

6·25전쟁 직전인 1949년 10월 발행된 여성잡지 ‘조선여성’ 역시 일반 여성들에게 소련의 고마움을 세뇌시키는 내용이었다. 전쟁 중인 1952년 문화선전성이 펴낸 ‘선동원 수첩’은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김일성 주석이 주고받은 편지로 시작했다. 소련이 군량미를 지원했고 북한은 감사를 표시했다는 내용이다.

입만 열면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고 남한을 식민지라고 떠드는 북한이 ‘소련 제국주의’의 힘으로 탄생했고 동족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비극적인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사료였다. 도서관에는 1950년에 출판된 ‘학습재료’ 1호 등 탄생 초기 북한 정권의 생각과 움직임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공간문헌’들이 즐비했다.

리 사서는 “이 자료들은 현재 북한에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문서들은 6·25전쟁 당시 한반도 북반부에 진주했던 미군이 노획해 온 것으로 추정된다. 전쟁 통에 평양 등의 도서관과 문서창고는 불에 탔고 당시 북한 정권도 역사 자료 보관을 위한 별다른 대책을 마련해 둘 정도로 여유가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군의 손에 들려 화마를 피한 이들 자료도 6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보존의 문제’에 봉착했다. 누런 갱지들은 제대로 묶여 있는 것이 없었고 일부 낱장은 마르고 해어져 타고 남은 신문지처럼 부서질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 위에 적힌 글씨 역시 희끗희끗 사라져 해독이 쉽지 않은 부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도서관 측은 문서들을 두꺼운 종이 파일로 싸고 다시 서류봉투 속에 넣어 훼손을 늦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닌 듯했다. 리 사서는 “더 늦기 전에 문서들을 전산화해 전 세계 북한 자료 네트워크에 올려 북한 연구자들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자료의 보존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뿐더러 전 세계 북한 연구자들이 워싱턴까지 방문해 자료를 찾아 복사하는 번거로움과 비용, 이 과정에서 낡은 자료를 더욱 훼손시키는 악순환이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이 사업에 돈을 쓰느냐에 있다. 2012년에 5개 대륙의 북한 연구자 36명이 청원까지 했지만 연방정부 재정적자로 예산 줄이기에 나선 의회는 여력이 없는 상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정책에서 대북정책의 우선순위가 크게 뒤로 밀려난 것처럼, 미국인들이 북한 자료에 돈을 쓸 것 같지 않다.

8일 1차 회의를 연 통일준비위원회가 지금까지처럼 통일 이후의 장밋빛 청사진 보여주기에서 나아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사업들을 추진해 나갈 각오라면 전 세계에 흩어진 북한 사료 모으기 사업에도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통일이 되면 한반도 북쪽에 존재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를 다시 써야 할 책임도 우리 손에 있기 때문이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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