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영도적 대통령과 육법당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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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실종자 가족의 한 사람이 물었다. “대통령님, 여기 계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님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또 다른 가족이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애들이 다 죽었잖아요. 어떻게 해결을 하실 건지.”

가족들은 며칠 전에는 팽목항 가족대책본부에 이 장관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을 앉혀놓고 “대통령이 가족들 전화는 언제든 받는다고 했으니 연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장인 해수부 장관이나 구조를 총괄하는 해경청장은 가족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돼버렸다.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정부의 민낯이다. 대통령 말이라고 팍팍 먹히는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은 참사 9일 전인 4월 7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에 3000개가 넘는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지만 현장에서 내용을 잘 모르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매뉴얼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마이동풍이었다. 출범 1년 3개월밖에 안 된 정부가 어쩌다 이런 복지부동에 오합지졸이 됐을까.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관료 출신을 중용했다. 특히 5공 때처럼 육군사관학교와 법대 출신 관료들이 청와대와 내각의 주축을 이뤄 ‘육법당(陸法黨)’이 부활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공안검사 출신의 김기춘 비서실장과 정홍원 국무총리, 육사 출신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대표적이다. 선거대책위원장 대통령직인수위원장에 이어 총리 후보자로 내정했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대선특보단장을 지낸 이주영 해수부 장관 등 정부 쪽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법조관료 출신이다.

이들은 ‘받아적기’로 상징되는 하향식 국정운영에는 일조했을지 몰라도 창조적 능동적인 책임장관 책임총리 구현에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따라다닌다. 그 결과 모든 화살은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다. 각 부처에서는 1급은 물론이고 과장급 인사까지 청와대가 챙기는 통에 몇 달씩 공석인 자리가 한둘이 아니라고 비명이다.

대통령의 ‘영도’만 있을 뿐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는 권위도 리더십도 갖지 못한 장관들에게서 책임감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직후 정 총리나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 해수부 장관 등이 스스로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대변인을 통해 “국가안보실은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런 참모들로부터 박 대통령은 과연 몇 시에 어떤 보고를 어떻게 받았고,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전모가 밝혀져야 한다.

육사와 고시 출신 말고는 검증된 엘리트층이 별로 없던 개발경제 시대에 육법당은 ‘영도적 대통령’의 뜻을 충실히 집행하는 추진체 역할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복잡다단한 21세기 위기와 도전에 응전하는 데 이런 육법당 체질로는 한계가 있다. 유대인들에게 도전적인 생각으로 무장한 ‘후츠파 정신’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이 ‘창업국가’의 성공신화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 정부의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이 지난해 말 저서에서 강조하지 않았던가. 박 대통령이 예고한 국가개조 작업은 육법당을 연상케 하는 기존의 인사풀을 넘어 민관(民官)의 창조적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 팀을 꾸리는 광폭(廣幅)인사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박근혜 대통령#세월호#해양경찰청장#권위#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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