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통곡의 바다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자원봉사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세월호 사고를 당한 실종자의 가족들은 진도실내체육관에 모여 탈진한 상태로 누워 있거나 링거를 맞고 있다. 슬픔을 드러낼 기운조차 잃은 듯 구조 작업을 전하는 대형 스크린만 무표정하게 주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사이로 열심히 식사를 나르거나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고 빨래를 수거하는 이들이 보인다. 주부 대학생 직장인 등 전국에서 모여든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체육관 옆 천막에서 토막 잠을 자면서도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다. 시신 발견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오열하는 가족을 따듯하게 위로하는 일도 이들의 몫이다.

체육관에서 팽목항으로 시신을 찾으러 가는 유족을 위해 승합차를 운행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단원고가 있는 경기 안산시에서 내려온 평범한 가장들이다. 생업을 제쳐두고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은 “같은 동네 사람이라 더 가슴이 미어진다. 시신을 다 찾을 때까지 자녀를 보는 마지막 길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시신이 발견되면 한순간에 실종자 가족에서 사망자 유족으로 처지가 달라지는 학부모들을 멀리 안산의 장례식장까지 매일 무료로 데려다주는 개인택시 기사들도 있다.

온 국민이 간절히 ‘맹골수도의 기적’을 기원한 지도 오늘로 열흘째 접어들었다.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 두 곳의 모든 일상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움직인다. 나라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총인원 1만여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피해자 가족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유족들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는 없어도 슬픔을 함께 나누려는 행렬은 임시 합동분향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제 문을 연 안산올림픽기념관 분향소에는 밤늦도록 일반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리고 풋풋한 얼굴의 학생증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변해 빈소에 걸린 모습을 보면서 조문객들은 울고 또 울었다. 분향소 입구 게시판에는 눈물 어린 쪽지들로 가득 찼다. ‘언니 오빠들 좋은 곳에 가세요’라고 삐뚤삐뚤 쓴 쪽지부터 ‘잎사귀보다 푸른 너희들이 왜 여기에… 창밖에 우거진 신록을 보는 것조차 사치 같구나’라는 추모 메시지는 희생자 가족의 비통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자원봉사는 공동체와 타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베푸는 일이다. 유엔은 자원봉사가 지구촌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본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바다를 뒤덮은 죽음의 기름띠를 걷어내고 주민의 아픔을 치유한 것도 123만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 덕분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기근과 자연 재난 등이 닥치면 서로 도와주는 미덕을 실천했다. 조선 향약의 4대 덕목에 꼽히는 ‘환난상휼(患難相恤·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서로 돕는다는 뜻)’의 전통은 오늘날 자원봉사의 물결로 계승되고 있다. 이런 공동체 정신이 거대한 슬픔의 바다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에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기원한다.

-진도 팽목항에서
#팽목항#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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