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문화 DNA’ 우습게 보다가… 큰돈 쓰고 큰코 다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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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소치 올림픽 폐회식이 진행되던 시각, 필자는 미국인 친구 두 명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스마트 TV와 아이패드로 폐회식을 시청하던 중 다음 개최지 소개 차례가 되자 궁금한 마음에 평창과 관련된 이미지를 찾아봤다는 것. 그 다음 말이 정말 재미있었다. 스페셜 올림픽 등 평창이라는 검색어와 연관된 다양한 캐릭터와 이미지가 나왔고, 그 중 '무지개 색'이 다양하게 형상화된 그림을 본 친구들은 "반동성애법으로 논란을 일으킨 러시아에 항의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건넸다.

실제 평창 올림픽과 무관한 이미지였지만, 변화된 TV시청 환경 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이미지만으로도 '무지개색=동성애자 연대'를 순식간에 떠올린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이미지 하나를 놓고도 완전히 다른 인식을 한다. 이같은 문화 DNA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케팅이나 광고, 디자인 전략, 비즈니스 협상 등에서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 갤럭시 기어 광고의 실패

북미지역에서 야심차게 전개됐던 삼성 갤럭시 기어 광고의 실패 역시 언어적 맥락과 역사적 경험의 차이 즉 문화 DNA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최악의 광고’라는 혹평까지 받았던 해당 광고에서는 한 남자가 스키 리조트에서 리프트 옆 자리에 앉은 여성에게 갤럭시 기어를 보여주고 여자는 그 남자에게 반한다는 설정이 나온다. 서양 언어구조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실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의 지도라 할 수 있는 언어구조를 통해 살펴보면, 미국인들은 멋진 상품을 보면 ‘클래시(classy)’라고 외친다. 멋지다, 고급스럽다, ‘있어 보인다’의 뜻을 갖고 있는데 로마시절 ‘계급을 부여받은 시민’이라는 뜻에 그 기원을 갖고 있다. 이는 다시 고전적이라는 뜻을 가진 ‘클래식(classic)’이라는 단어와 연결된다. 따라서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에서 ‘최신 전자제품’은 ‘매우 편리한’ 것일 뿐, 결코 ‘클래시’할 수 없다.

클래시 외에도 서양언어에서 ‘고급스럽다’의 뉘앙스를 가진 단어들은 반드시 ‘남과 다르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독점적 혹은 배타적이란 의미를 가진 단어 ‘익스클루시브(exclusive)’의 어원적 의미는 ‘벽을 둘러쳐 밖에 가두다’다. 취향이 고급스럽다는 표현을 할 때 쓰는 ‘디스크리미네이팅(discriminating)’이란 단어 역시 ‘차별할 줄 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남들 다 쓰는 보편적인 물건을 쓰지 않는 것이 곧 ‘고급 취향’이라는 것이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제품을 홍보할 때 이런 단어를 쓰면 서구 사람들은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 문화 DNA, 소비패턴을 바꾼다

프랑스 르노사가 대주주인 일본 자동차회사 닛산은 크로스오버 유틸리티 차량(CUV) 라인인 ‘쥬크’에 아날로그시계를 탑재했다. 쥬크의 한국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 한국인 고객이 ‘다 좋은데 최신 차에 왜 아날로그냐’라는 코멘트를 남겼다. 그에 대한 딜러의 답변은 ‘미국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것입니다’였다. 정확한 답변이다. 닛산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이미 미국 소비자들의 문화 DNA 안에 ‘클래시’와 ‘클래식’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여러 시장 진출 경험을 통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역사적 경험 역시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되는 요소들이다. 어휘의 맥락적 이해, 뉘앙스 파악은 각 문화권의 역사에 대한 이해 속에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가 왕실 용어로 오랜 시간 군림했던 영국의 역사를 알아야, 똑같이 ‘속옷’이란 의미를 갖고 있어도 영어인 ‘언더웨어(underwear)’는 싸구려가 되고 프랑스어인 ‘란제리(lingerie)’는 고급 속옷이 되는 까닭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영국 문화가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문화보다 고급으로 여겨지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로 이어지는 영미-유럽 문화와 어휘에 대한 이해는 ‘고급’과 ‘싸구려’를 나누는 큰 기준이 되고 소비패턴의 변화를 야기한다.

사실 현재 서구인들의 사고방식은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나 할리우드 영화를 타고 전 세계로 퍼져 한국 젊은이들의 소비 패턴마저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서구화된 젊은 소비자들이 판매자로부터 ‘요즘 이런 거 많이들 해요’라는 구매 권유를 받으면 오히려 짜증을 내는 이유다. 따라서 서구 언어와 역사에 기반한 문화 DNA를 연구하는 건 앞으로 한국의 젊은 소비자들까지도 염두에 두고 반드시 실행해야 할 기업의 과제가 된다.

○ 문화 DNA 이해를 통한 글로벌 전략 수립

요즘 많은 한국 기업들이 앞 다퉈 개척 중인 동남아 소비자들은 국내 소비자들보다 훨씬 더 서양적 관점에서 물건을 구매한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1595년부터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가 진출했고 1800년부터는 아예 네덜란드 영토로 편입시켜 250년 가까이 식민지 통치를 했다. 네덜란드 문화가 인도네시아인들의 고유 DNA에 결합될 수밖에 없었다.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은 10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 나라의 국민은 싫건 좋건 프랑스의 철학, 이념,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도시 계획 등을 그들의 DNA에 간직하고 있다. 개발이 좀 늦었고 동양권이라고 해서 ‘한국적인 마인드’로만 접근하면 실패한다는 얘기다.

사람의 DNA는 세포 속 게놈 지도 속에 들어 있다. 미국 유럽 동남아 동북아 등 한 문화권의 게놈 코드는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사용해 온 어휘, 그 어휘가 형성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존재한다.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진출하든 바로 이 부분부터 연구해야 한다.

조승연 문화전략가 scho@gurupartners.kr
정리=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문화DNA#마스코트#스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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