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병들이 귀중한 정력 배출하는…” 日軍, 위안부 직접 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19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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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지린성기록보관소가 공개한 한 문건(사진 위)에 쉬저우 주둔 일본군 7990부대 화이하이 성 연락부가 위안부 구입 자금으로 25만2000엔 사용 여부를 문의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자오위제 연구원(사진 아래)이 창춘에 있는 기록보관소 11층 역사자료실에서 관동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창춘= 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20일 지린성기록보관소가 공개한 한 문건(사진 위)에 쉬저우 주둔 일본군 7990부대 화이하이 성 연락부가 위안부 구입 자금으로 25만2000엔 사용 여부를 문의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자오위제 연구원(사진 아래)이 창춘에 있는 기록보관소 11층 역사자료실에서 관동군의 위안부 동원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설명하고 있다. 창춘= 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
일본 관동군이 자체 예산을 들여 직접 위안부 '구매'에 나섰으며 위안부 징집은 일본이 1938년 선포한 국가총원법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일본 측 자료들이 공개됐다. 중국 지린(吉林)성 당안관(기록보관소)은 20일 동아일보 등 일부 한국 언론을 초청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뒷받침하는 일본 측 작성 자료들을 공개하는 행사를 가졌다. 중국이 기록보관소 내부와 기밀자료를 직접 외국 언론에 공개하기는 처음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1945년 3월 30일 위만중앙은행 안산(鞍山)지점 불가삼(不可三) 대리지점장은 본점 자금부 외자과에 "쉬저우(徐州) 주둔 일본군 7990부대 화이하이(淮海) 성 연락부가 안산지점에 위안부 구입 자금으로 25만2000엔 사용'에 관한 보고서를 보내왔다"고 보고했다. 요청을 받은 본점 자금부가 해당 대리지점장에게 20여만 엔 사용 권한 의견을 전하는 통화기록도 있었다. 화이하이(淮海) 성은 현재의 산둥(山東) 허베이(河北) 안후이(安徽) 장쑤(江蘇) 성 일부를 아우르는 지역이다.

무잔이(穆占一) 당안관 부관장은 "두 통의 통화내용을 분석하면 일본군이 1944년 12월¤1945년 3월 4차례에 걸쳐 공용자금을 군위안부 항목에 지출했고 그 액수가 당시 53만2000엔에 이른다"라고 설명했다. 무 부관장은 "이는 일본군이 위안부 조달에 직접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1941년 헤이룽장(黑龍江) 성 베이안(北安)지방검열부가 발행한 '우정검열월보'에는 "육군관사 한구석에 위안소가 있는데 소극장 안의 창고처럼 생겼다. 사병들이 귀중한 정력을 배출하는 곳이다. 20명인 위안소 병력(兵力·위안부 지칭)은 전부 선인(鮮人·조선인)으로 국가총동원법에 속박된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가 실렸다. 이는 헤이룽장 성에 사는 한 일본인이 일본 본토의 지인에게 보낸 것이다. 일본군은 군사기밀 등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편지나 전보를 일일이 검열했으며 이를 우정검열월보에 기록했다고 자오위제(趙玉潔) 연구원은 설명했다.

또 1938년 2월 화중(華中)파견 헌병대가 관동군사령부에 보고한 '난징(南京)헌병대 관할구역 치안회복 상황보고서'에는 난징 우후(蕪湖) 등 8개 시현에 배치된 일본군 규모, 위안부 수, 위안부 1명당 군인 비율, 열흘간 위안소를 이용한 군인 수 등이 기록돼 있다. 우후 지역 군위안부 109명 중에서는 조선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내용도 나와 있다.

인화이(尹懷) 관장은 "일본이 위안부 모집과 운영에서 정부나 군이 개입한 것을 부인하고 있으나 자신들이 작성한 자료로 확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해독된 자료들은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라며 "해독 작업이 계속되면 일본군의 만행을 입증하는 문서들이 추가로 발견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린성 기록보관소가 있는 창춘은 일제가 세운 위만주국 수도이자 관동군 헌병대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무 부관장은 "1950년대 헌병대 사령부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패망 직전) 미처 불태우지 못하고 땅에 묻어뒀던 문서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당안관이 소장한 문서는 총 10만여 권으로 위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민생부, 농업부, 군사부, 관동군헌병대, 중앙은행 등 65개 기관이 남긴 기록물이다.

당안관 11층 역사자료실에는 청나라 시대와 일제 중국 침략시기의 자료가 보관돼 있다. 지문인식시스템을 갖춘 두꺼운 철문이 설치된 당안관은 온도조절, 방습, 방진 등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전체 규모는 800㎡, 깔끔하게 배열된 철제 서가 안에는 색이 바랜 옛 문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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