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군국주의자라 불러도 좋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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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싱크탱크 연설서 극단적 발언… 집단적 자위권 의지 강력 표명

“나를 우익이라 부르고 싶으면 불러라. 아베노믹스에 투자해 달라.”

26일로 자민당 총재 선출 1주년을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에 거침이 없다. 중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인데 국내의 높은 지지도가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을 방문 중인 아베 총리는 25일(현지 시간)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허드슨연구소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본은 올해 방위비를 0.8% 올렸다. 하지만 중국의 군비 지출은 매년 10%씩 20년 이상 늘렸다”며 “(이런 상황인데) 나를 ‘우익 군국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부디 그렇게 불러 달라”고 말했다. 중국의 군비 증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나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은 일본인에게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을 자랑스럽게 짊어지도록 촉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적극적 평화주의’는 최근 아베 총리가 외교, 안보전략을 언급할 때 즐겨 사용하는 키워드. 아베 총리는 “적극적으로 세계 평화와 안정에 공헌한다는 의미”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군사 대국화로 나가기 위한 위장 슬로건이다.

집단적 자위권도 이 같은 적극적 평화주의 실현이란 맥락에서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이 주된 역할을 맡고 있는 지역 및 세계 안보 틀에서 일본이 ‘약한 고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요미우리신문은 26일 아베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 대상에 동맹국에 대한 무력공격 대처 이외에 중동의 에너지 수송을 위한 해상교통로 안전 확보 등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도 포함시킬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 경우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지리적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이날 강연은 허드슨연구소가 미국의 국가안보에 공헌한 인물에게 주는 ‘허먼 칸’상 수상자로 아베 총리를 선정한 것을 기념해 이뤄졌다. 지금까지 수상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딕 체니 전 부통령 등 모두 미국의 보수 지도자였다. 미국인 이외에 처음으로 아베 총리가 수상한 것. 허드슨연구소는 “아베 총리는 일본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개혁을 이뤄나가는 변혁기의 리더”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25일 현직 일본 총리로서 처음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했다. 그는 “(영화에서) 고든 게코가 23년의 공백 끝에 금융계에 돌아온 것처럼 우리도 지금 ‘일본이 되돌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게코는 한때 몰락한 금융전문가였지만 23년 만에 재기한 인물로 등장한다.

아베 총리는 또 투자 유치를 위한 규제 완화, 감세 방침 등을 설명한 후 “세계경제가 회복하려면 단어 3개만 알면 된다. 나의 아베노믹스에 투자하라(Buy my Abenomics)”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총리는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자민당 간사장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국회의원만 대상으로 하는 2차 투표에서 순위를 뒤집었다. 당시 총재 선거에서 라이벌이었던 인물들이 곧 반기를 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현재 사정은 180도 달라졌다. 아베 총리는 라이벌 대부분을 내각과 당의 중역으로 앉혀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웠다.

아사히신문은 26일 “자민당 내 ‘포스트 아베’ 후보자나 아베 총리에 대항할 만한 존재가 없다”고 보도했다. 국민적 지지에 당까지 장악했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장기 독주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하지만 아베 총리가 언제까지 거침없이 달릴지는 미지수다. 총리관저의 힘이 너무 강해져 정당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자민당 내부에서 싹트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 총리#집단적 자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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