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비디오로… 스토리로… 진화하는 정치패러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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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의 내란음모 부인 풍자한 ‘석기복음’
국정원 대선개입 뮤비 ‘풍문으로 들었소’

굵직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면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정치 패러디가 등장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당시 ‘윤 전 대변인이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잡아 쥐었다(Grab)’란 증언이 나오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한 ‘Grab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가 인터넷을 달궜다(맨 위).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 때는 이 의원을 이중 스파이를 소재로 한 홍콩영화 ‘무간도’의 등장인물로 그린 ‘무간석기’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었고(가운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때는 가수 ‘센치한 하하’의 노래 ‘죽을래 사귈래’를 개사한 뒤 직접 뮤직비디오를 찍은 패러디물이 온라인을 장식했다(맨 아래). 인터넷 화면 캡처
굵직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면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정치 패러디가 등장한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 당시 ‘윤 전 대변인이 여성 인턴의 엉덩이를 잡아 쥐었다(Grab)’란 증언이 나오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한 ‘Grab과 함께 사라지다’ 포스터가 인터넷을 달궜다(맨 위).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 때는 이 의원을 이중 스파이를 소재로 한 홍콩영화 ‘무간도’의 등장인물로 그린 ‘무간석기’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었고(가운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때는 가수 ‘센치한 하하’의 노래 ‘죽을래 사귈래’를 개사한 뒤 직접 뮤직비디오를 찍은 패러디물이 온라인을 장식했다(맨 아래). 인터넷 화면 캡처
‘국정원 요원이 나아와 가로되 너도 평양 사람 김정은을 추대하는 곳에 함께 있었느냐 하거늘 이석기가 부인하며 가로되 나는 국정원이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최근 온라인에 등장한 이른바 ‘석기복음’의 한 대목이다.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북한 정권과의 연계를 부인하는 것을 성경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에 빗댄 패러디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 사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건, 포스코에너지 임원 비행기 여승무원 폭행 등 굵직한 정치·사회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봇물 터지듯 수많은 정치 패러디가 등장하고 있다.

○ 진화하는 정치 패러디


과거의 정치 패러디는 단순히 사진이나 만화 등 이미지 속 얼굴을 장난삼아 바꾸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동영상, 뮤직비디오, 스토리 구조를 갖춘 만화·소설식 연재 등 내용·기술적인 면에서도 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끄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 대부분은 패러디물이며 그중 ‘정치 패러디’가 큰 축을 형성하고 있다”며 “그동안 예의 없는 저질문화, 창의성 없는 싸구려 작품 등으로 폄하됐던 패러디가 최근 은유적 표현 기법이나 내용면에서 깊이를 더해가고 있다”고 평한다. 정치를 즐기는 한 방식으로 정치 패러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정치 패러디는 크게 △영화 음악 칼럼 등 작품 패러디 △스토리 패러디 △창작 패러디 등으로 구분된다.

작품 패러디의 경우 영화 음악 만화 등 권위 있는 예술작품이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소재를 사용한다. 올 4월 포스코 임원이 ‘라면이 짜다’는 이유로 기내에서 승무원을 폭행한 사건이 알려지자 일본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원용한 ‘라면왕 왕상무’라는 만화 패러디가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이석기 의원 사건은 여러 스토리 패러디를 낳았다. “A라는 철탑이 있다고 하자. 그 철탑을 파괴하는 것이 군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등 이 의원의 강연 녹취록이 공개되자 주인공이 세계 정복을 꿈꾸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에 빗댄 패러디가 다수 등장했다. 이중스파이를 소재로 한 홍콩 영화 ‘무간도’의 줄거리를 딴 ‘이석기 안보 시나리오 무간석기’도 스토리 패러디로 분류된다.

창작 패러디는 다른 작품이나 스토리를 원용하지 않고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말한다. 7월 북한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었던 정전협정 체결 6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실물이 아닌 모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누리꾼들은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구입한 것’이라며 북한 김정은이 인터넷 검색을 하는 모습이 담긴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냈다. 윤창중 전 대변인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는 윤 전 대변인이 엉덩이를 드러낸 만화 캐릭터가 돼 손으로 엉덩이를 주무르는 시늉을 하는 동영상이 인기 있었다.

○ 스마트기기가 정치 패러디의 날개

정치 패러디의 진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스마트기기 발달의 영향이 크다. 그래픽 동영상 등 시각적 콘텐츠를 자유자재로 편집하고 변형할 수 있는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개인이 다양하고 실험적인 영상을 만들기 쉬워진 덕분이다.

요즘 인기를 끄는 패러디물 중 상당수는 스마트기기 사용에 익숙한 20, 30대 연령층의 일반 누리꾼이 만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이슈에 대해 댓글, 게시글 등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패러디 창작물을 통해 자신의 생각에 대한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형성하려 하는 일종의 ‘적극적 정치 참여 행위’인 것이다. 대학원생 윤찬행 씨(30)는 “성명서나 기자회견 등은 딱딱하고 공감하기도 어렵지만 정치 패러디물은 표현 방법이 다양하고 재미있어 쉽게 공감될 뿐만 아니라 정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한다”고 했다.

특정 정치적·이념적 성향의 단체 회원들이 패러디를 만드는 경우도 많다.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과 관련해 등장한 ‘풍문으로 들었소’와 ‘국정원 쌩깔래’ 등의 뮤직비디오는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라는 단체의 회원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풍문으로 들었소’는 가수 함중아의 노래를 ‘장기하와 얼굴들’이 리메이크한 곡이다. ‘국정원 쌩깔래’는 ‘센치한 하하’의 ‘죽을래 사귈래’를 개사한 패러디다.

최근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진화한 형태의 패러디가 많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자극적 문구나 단순한 흥미 위주의 패러디도 많이 만들어져 나돈다. 올해 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게임이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정치패러디#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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