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칼럼]불쌍한 ‘공돌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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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려 하면 “기술유출”… 아, 노예가 따로 없구나

기자는 공대를 나왔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대학 동기들이 많다. 그중 누구나 아는 대기업 A사를 다니다 직장을 옮긴 친구가 최근 한동안 경찰과 검찰에 불려 다녔다. 기술유출과 배임 혐의. 회사에서 작업하던 컴퓨터 파일을 개인용 저장장치에 복사해 집으로 가져온 것이 문제였다. 회사는 복사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친구가 퇴직한다니 그제야 문제 삼았다.

A사 감사팀 직원들이 마치 수사관들이 압수수색을 해 가듯 친구의 집에 들어와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떼 갔다. 친구는 출국 금지도 당했다. 기술유출 혐의는 벗었지만 배임 혐의는 아직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A사의 목적은 이 친구의 배임 여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고 본다. ‘회사 옮기려면 이 정도는 각오해’라고 A사가 남은 직원들에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지난해 경기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는 ‘90조 원대 규모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국가핵심기술을 경쟁사로 빼돌리려 했던’ 대기업 연구원 11명을 검거했다. 연구원들은 ‘경쟁사의 금품 제공과 임원급 대우 조건에 무너졌다’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간 영업이익이 30조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뻥튀기도 이런 뻥튀기가 없다. 정말 90조 원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그 기술을 개발한 직원들을 얼마나 푸대접했기에 11명이 단체로 회사를 떠나려 했단 말인가.

이직도, 창업도 어려운 한국 풍토에 엔지니어들의 선택권은 많지 않다. 동종업계 이직금지 서약서를 쓰는 것도 주로 이공계다. 한 회사에 노예처럼 묶여 살 수밖에 없는 ‘공돌이’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조진서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cjs@donga.com
#엔지니어#기술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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