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에이즈’ 대책 고민 “방제 위해 북한산 나무 41% 자를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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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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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화계사 일대 숲의 모습. 지난해 여름 촬영된 이 사진을 보면 푸른 나무들 사이에 붉게 말라 죽어 가는 참나무시듦병 감염 나무(점선 안)가 보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북한산 나무의 41%(158만 그루)가 ‘나무 에이즈’인 참나무시듦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되면서 환경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주로 감염된 나무를 베어 없애는 방제법이 시행돼 왔다. 하지만 베어야 할 나무가 너무 많은 데다 유인목, 끈끈이 등을 사용하는 보완책은 감염 확산을 막을 뿐 나무를 되살리는 근본적인 효과를 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또 나무를 베어 처리하더라도 최소 수백억 원이 들 것으로 보여 예산 마련도 발등의 불이 됐다.

○ 갑자기 왜

공단에 따르면 북한산에 참나무시듦병이 처음 발견된 시기는 2008년이다. 당시에는 발병 규모가 크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참나무시듦병이 북한산 전역으로 확산됐고 그 까닭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 탓이라고 산림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6월 22일부터 8월 10일까지 총 50일 동안 서울에는 1608.8mm의 비가 내려 1907년 이후 104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례적인 폭우로 북한산 대기 중 습도와 토양에 습기가 많아져 나무전염병이 확산되기 좋은 환경이 형성됐다는 것이 공단 측 설명이다. 공단 오장근 자원보전부장은 “날씨가 덥고 강우 일수가 많아지면 그만큼 나무속 수분도 많아져 라펠리아균과 이를 옮기는 매개충인 광릉긴나무좀이 쉽게 증식한다”고 말했다.

북한산 수목의 대규모 감염이 그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참나무시듦병의 독특한 발병 형태 때문이다. 참나무가 이 병에 감염되면 바로 고사하지 않고 잎이 붉은색으로 변하며 서서히 말라죽는다. 따라서 가을에는 단풍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반면 봄이 되면 이 병에 감염된 나무들은 잎사귀가 붉게 말라 비틀어져 있거나 아예 잎이 나지 않아 새순이 나오는 일반 나무와 확연히 구별된다. 산림청 관계자는 “자칫 북한산의 푸른빛이 사라져 ‘산에 죽은 나무가 많다’는 탐방객들의 민원이 폭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기존 방제 방식 생태·경관 훼손 우려

공단은 산림청에서 협조를 받아 참나무시듦병 방제를 4월 안에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4월까지 대대적인 방제를 하지 못하면 나무속에서 겨울을 난 광릉긴나무좀 유충들이 성충이 돼 5월부터 더 많은 균을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방제는 병든 나무를 밑동째 잘라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산림청 산림병해충과 김동성 사무관은 “감염된 나무를 잘라낸 후 그 단면에 약품을 바르고 비닐로 덮는 ‘훈증(燻蒸)’ 처리를 할 것”이라며 “잘라낸 나무는 소각하거나 비닐로 덮어 해충이 다른 나무로 이동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유인목을 심어 광릉긴나무좀을 유인 △살충제를 뿌리거나 나무에 끈끈이를 설치해 광릉긴나무좀 포획 △나무의 밀도를 조절해 저항력이 약해진 노령목의 내성 증강 유도 등의 방제법이 병행된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참나무시듦병의 확산을 막는 방법일 뿐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닌 데다 감염된 나무를 베어버리는 훈증 처리 방식을 쓸 경우 북한산국립공원의 경관과 생태가 크게 훼손될 수 있어 공단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1990년대 소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솔잎 혹파리가 급증했지만 소나무에 내성이 생겨 이겨냈다”며 “무조건 나무를 자르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구나 감염된 나무 한 그루를 훈증 처리하는 데만 약 10만 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158만 그루를 모두 훈증 처리하려면 1580억 원이 들어 예산을 조달할 방법이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북한산 방제대책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국립산림과학원 박일권 연구원은 “광릉긴나무좀의 증식 속도가 너무 빨라 나무가 스스로 병을 이겨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기존 훈증 방식을 바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엄태원 상지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감염된 나무를 베어버리는 방법을 생태를 그대로 보전해야 할 국립공원에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유인목, 끈끈이 설치 등으로 확산을 최대한 막으며 나무가 스스로 회복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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