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동률]융합의 시대… 이공계 출신도 인문학적 소양 갖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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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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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한 손에는 논어를 한 손에는 주판을.” 일본 경제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한 말이다. 두 차례나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른 그는 일찍부터 공자의 인문 정신, 즉 후마니타스가 현대 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 한 세대를 앞서 간 전설적인 기업인이다. 그래서 서양에는 피터 드러커, 동양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윤종용 삼성전자 고문을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은 그의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된다. 그의 세계사나 인류문화에 관한 지식은 그가 이공대 출신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그러면서 그가 이 같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소양을 겸비했기 때문에 오늘날 삼성전자를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게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모든 면에서 ‘열공’이다. 식사량도 많고, 오지랖 넓게도 인류 문명과 역사에 관한 책을 서너 권이나 펴냈다. 골프도 싱글 수준. 옆에서 지켜보는 젊은 사람들이 외려 샘을 낼 정도다. 우리 생애에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으리라고 믿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한국 현대사에 윤종용의 이름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중국의 지도자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역시 이공계 출신이다.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후진타오는 전공인 수리(水利) 분야 외에 정치사상에 깊이 심취했다. 그의 관심은 정치 경제는 물론이고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다. 언젠가 쿠바 대학생 1500명을 맞아 환영 노래를 부를 때도 직접 같이 노래를 불러 세계인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베이징 지질학원을 졸업한 이공계 출신인 원자바오 역시 누구보다 인문학에 조예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전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앞서 서구 언론과 만났을 때 이마누엘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에 나오는 명구를 줄줄이 외워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최근 관심을 모은 삼성그룹의 인사를 보면 이공계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이번 인사의 가장 핵심은 지방대 출신과 이공계 전공자의 대대적인 발탁에 있다고 한다. 사장 승진자들의 프로필을 보면 올해 10명의 신임 사장 중에서 이공계 출신은 7명으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지난해 11명의 승진자 중 7명이 인문계 출신이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이공계 출신이지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자 못지않은 전방위적인 내공을 지녔다는 것이다. 단순히 연구실이나 생산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글로벌 시대에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되 인문학 사회학적 경험을 가진 인재 양성은 이제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됐다. 그래서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 각종 모임을 찾아다닌다. 졸린 눈을 비비며 조찬 모임에 나가 경영학적인 감각과 인문학적인 소양을 쌓는 모습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실제로 지식기반 사회로 들어서면서 이제 전공이나 영역에 따른 분류나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인류의 일상생활 자체가 급속도로 융합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이공계 학문을 전공한 사람에게도 인문학과 경영학적인 마인드를 전수한다는 목적 아래 융합대학원, 기술경영대학원 등 다양한 통섭형 대학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후진타오, 스티브 잡스, 윤종용 같은 통섭형 인재를 키우자는 게 이 학문의 요체다. 전문가들은 과거 경영학 석사(MBA)가 붐을 일으킨 것처럼 앞으로 테크노 경영(Management of Technology)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기술, 경영, 후마니타스가 조화를 이룬 융합의 시대에 한 발 깊숙이 들어선 2011년 세밑이다.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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