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케이팝 스타들의 동남아 진출을 도와
●"지금 이 순간 동남아 시장은 케이팝이 트렌드를 주도"
우리가 '동남아시아'란 지역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처음에는 넓고 광활한 땅과 많은 인구에서 나오는 다양성, 그리고 풍요로운 자연자원 덕분에 "꼭 가보고 싶은 나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동남아 순회공연을 다녀왔다"는 식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상대적으로 쉬운 시장'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특히 최근 불고 있는 케이팝 열풍이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케이팝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인 동남아 대중문화시장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졌다.
아시아 10대 소년소녀들이 케이팝을 좋아하는 것은 이제 당연하다는 분위기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과연 동남아 음악시장은 우리가 만만히 보아도 좋을 만큼 손쉬운 시장일까? 과연 아무런 투자 없이 현재의 인기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을까? 또한 신체조건과 문화환경이 비슷한 그들이 어느새 케이팝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지 않을까?
이 같은 의문을 안고 9월 중순 태국 방콕을 향해 떠났다.
듣던 대로 동남아 문화의 중심이자 인구 1200만 명이 거주하는 세계적인 메트로폴리탄 방콕의 10대는 케이팝이 점령한 지 오래였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의 '제이팝(J-pop)'이 주도하던 대중음악 시장은 눈 깜짝하는 순에 케이팝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인기 있는 빅뱅이나 소녀시대 2PM 등은 여기서도 시차 없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특히 태국 출신의 2PM 멤버 닉쿤이 등장하는 광고판은 도심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음악전문방송은 한국방송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만큼 케이팝 신곡이 쏟아져 나왔다. 태국의 케이팝 붐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피부에 와 닿는 실체가 있었던 것이다.
글렌 라살레(40) 아티스트 콘넥션 대표는 지난 10년간 지속된 케이팝의 동남아 진출의 생생한 목격자이자 조력자이다. 동남아 최대의 음반회사인 GMM깸미 프로듀서로 근무한 그는 케이팝의 확장 초기에 힘을 더하면서 시장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동아일보 DB)
■ "태국에 가면 반드시 글렌을 만나세요"
여기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아무리 해외에서 케이팝이 인기가 높다고 해도 이런 열기는 '10대에 한정'됐고 실제 주류는 태국 현지 가수라는 점이다. 이 점은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중음악 시장에서 10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지 않다. 때문에 전체 음악시장의 중심은 여전히 현지 가수들이다.
한창 팝송이 인기가 높던 1980년대 한국 음악시장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무리 마이클 잭슨의 인기가 높아도 조용필 이문세 이선희 등은 음반 판매량에서 압도적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태국에 가면 반드시 글렌 사장을 만나야 합니다."
'디알뮤직(DR뮤직)'의 윤등룡 대표는 2002년 당시 한국에서 인기가 높던 베이비복스를 앞세워 최초로 중국 태국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을 개척한 선구자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기자에게 귀띔한 핵심 인물이 바로 '글렌(Glenn)' 대표였다.
태국을 찾았던 윤 대표를 처음 맞이한 것은 철옹성같이 강고했던 태국대중음악 시장이었다.
특히 동남아 제1의 음반회사 GMM 깸미(그래미Grammy의 태국어 발음)다.
방콕 시내 중심부에 48층 초고층 빌딩 전체를 사용하는 이 회사는 태국 대중문화산업의 자존심이나 다름없었다.
TV 방송에서부터 잡지 출판 심지어 음반유통까지 총괄하는 이 회사의 자산규모는 무려 5조 원 가량으로 2002년 당시 SM엔터테인먼트가 시가총액 100억 남짓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쉽게 그 규모를 짐작할 수가 있다.
한국에서 온 초라한 사내를 맞이한 사람이 당시 GMM깸미에서 해외음반 배급을 담당하고 있던 '글렌 라살레(40)'라는 음악프로듀서였다.
태국의 대부분 음악관계자들은 한국의 대중음악을 무시했지만 그만은 금세 케이팝의 저력을 알아차렸고 윤 대표와 계약할 수 있었다. 동남아 시장을 뒤바꿔 놓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이후 10년간 거의 대부분의 케이팝 스타를 태국 및 동남아 시장에 소개하는 첨병이 된다. 물론 그와 케이팝의 인연은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다.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해 달라
"이제 마흔 살이다. 15년 이상 태국 대중음악산업에서 종사했다. 원래 음악프로듀서지만 작곡도 했고 드라마 음악도 제작했다. GMM깸미에 2002년 합류해서 해외음악에 관여했다. 당시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해외 뮤지션 음반배급을 담당했는데 소니에게 이 분야를 넘기면서 일본과 한국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지난해에는 독립된 회사를 차려 케이팝 가수 동남아 시장 프로모션에 집중하고 있다."
- 케이팝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3년 경 베이비복스의 태국시장 데뷔 앨범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이 최고 인기 해외음악이었는데, 조금 난해한 음악으로 변질되는 시점이었다. 일본이 인기가 있다면 당연히 한국도 가능하리라고 봤는데 생각보다 태국 소비자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2004년에는 '레인'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는 이효리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쥬얼리 등이 봇물처럼 밀려들어왔다."
■ 친숙하고 수준 높은 상품성으로 태국 10대 만족시켜
태국인 멤버 '조이'가 합류한 걸그룹 '라니아'는 빠르게 동남아 시장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 케이팝의 첫 이미지는 무엇이었나?
"바로 군무(群舞)다. 태국에서 하는 춤과 전혀 달랐다. 오랜 기간 연습을 통해 완벽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보통 태국 아이돌은 6개월 정도 준비기간을 통해 데뷔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한국 아이돌은 2년이 기본이었다. 특히 함께 모여 합숙을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동남아에서는 그렇게 훈련할 수 있는 문화가 없다. 대단하다고 느꼈다."
-첫 타자가 2002년 여성그룹 '베이비 복스'였는데…
"그렇다. 춤도 잘 추고 늘씬한 미녀군단이는데 그들은 당시 한국 이외의 시장을 처음 개척하는 입장이었다. 처음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인지 무척이나 겸손하고 신중해서 비교적 잘 적응한 편이었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졌기에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뒀다."
-그 다음은 누구였나?
"많은 가수들이 있었지만 역시 가수 '레인(비)'을 꼽아야 한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에 빠르게 최고의 인기가수였다. 당시 방콕에 3번이나 미디어 프로모션을 오면서 양쪽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태국에도 춤을 잘 추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의 춤은 강하고 역동적으로 아시아 사람에게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스타일이었다. 지금도 레인을 기다리는 태국 팬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오랫동안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렇다면 언제쯤 태국에서 케이팝이 제이팝을 역전했다고 보는가?
"2004년부터라고 본다. 제이팝은 지나치게 마니아 위주로 흘렀다. 이에 반해 케이팝은 대중이 쉽게 따라하기 쉬운 컨셉이었다. 2007년에는 케이팝이 태국 10대들의 주류문화가 됐고 2010년은 태국 사회 전체적으로 케이팝이 폭발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 베이비복스, 레인, 동방신기, 소녀시대…케이팝 폭풍
지난 3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MBC 창사 50주년 기념 한류 콘서트에서 사회자로 나선 소녀시대 티파니, 2PM 닉쿤, 유리(왼쪽부터). 사진제공|MBC -레인 다음은 어떤 흐름이 케이팝을 주도했나?
"역시 보이그룹이었다. 2007년경 동방신기 충격이 태국에 밀어닥쳤다. 거의 모든 제이팝 팬클럽이 케이팝 팬클럽으로 변한 시기다. 이어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현존하는 케이팝 스타들이 밀물처럼 태국에도 밀어닥쳤다. 특이한 점은 보이그룹의 인기 속에 걸그룹의 인기도 뚜렷했다는 점이다. 보통 10대 시장에서 보이그룹이 걸그룹보다 선호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도 케이팝 걸그룹은 큰 기대를 안했다. 그런데 소녀시대 2ne1 포미닛 등은 사상 유례 없는 빅 트렌드가 됐다."
-궁금한 점은 태국에 진출한 케이팝 가수들은 수익을 창출했을까?
"하하. 물론 케이팝의 수익의 절반 이상은 일본에서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태국의 음반차트를 보면 많지는 않지만 쏠쏠한 수익을 거둬가는 것은 분명하다. 광고를 촬영하는 아이돌도 상당수다. 태국은 절대로 작은 시장이 아니니까 말이다."
-태국 정부가 상당히 케이팝 열풍을 부러워하는 인상을 받았다.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나?
"이미 빠르게 한국을 벤치마킹 중이라고 본다. 태국은 발전 속도도 빨라졌고 적응도 나쁘지 않다. 2~3년 정도면 엇비슷한 수준에 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요즘에는 한국에서 직접 대중음악을 배워오는 이들도 많고 직접 한국에 데뷔하고 싶어 하는 아이돌도 적지 않다."
-케이팝이 빠르게 대세가 된 것은 사실인데 함께 일해 봤기 때문에 약점도 엿보았을 듯싶은데…
"물론이다.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음악제작과 프로듀싱 능력은 최고로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 짧은 시간에 전 세계에 유명해졌다. 뮤직 퍼블리싱, 저작권 관련 등 음악비즈니스 전반에서 경험이 부족하다. 계약을 어떻게 하고 처신해야 할지 당황해 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내가 일한 GMM깸미만 해도 20년이 넘는 역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계약 경험을 거쳤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아직은 매니지먼트에 능숙할 뿐이지 비즈니스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고 본다."
-당신이 보기에 태국에서 전도유망한 케이팝 아이돌은 누구인가?
"일단 '2PM'과 '소녀시대'의 전성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 같다. 빅뱅과 슈퍼주니어도 마찬가지다. 최근 애프터 스쿨 인기가 높아졌다. 춤 실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라니아도 애프터스쿨과 비슷한 부류로 인식되고 있다."
■ 2PM '닉쿤'과 라니아 '조이'…태국인들 모두가 부러워해
태국인 닉쿤은 케이팝이 배출한 가장 글로벌한 스타로 통한다. 태국에서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향후 케이팝 확장의 성공모델로 회자될만하다. 동아일보DB -태국 소녀들이 한국에서 연예인활동을 하는 경우가 생겨났다.
"일단 태국에는 예쁘고 눈에 띄는 인재가 많다. 라니아의 조이(JOY)가 대표적이다. 3000명의 경쟁을 뚫고 선발한 인재인데 한국어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이제 단 두 곡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이 곳에서도 인지도가 빠르게 늘고 있다. 기존의 케이팝 걸그룹이 귀여운 점을 강조했다면 라니아는 그 반대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세 번째 싱글이 나와 보면 그 가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닉쿤이 한국에서 최고의 스타가 됐다. 케이팝이 태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 혹시 태국 팬들이 그런 점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일단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된다. 닉쿤과 조이가 한국에서 데뷔해서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모든 태국 사람들이 행복해 하고 축복해 준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런 스타를 부러워하고 모방하려고 노력한다. 태국은 문화적 다양성이 있는 나라다. 제이팝이 30년 인기를 끌어도 끄떡 안했다. 케이팝의 인기는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혐 한류는 없다고 자신한다."
-케이팝과 함께 일하면서 가장 재미있던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 달라
"동방신기와 레인이 한창 인기가 좋았을 때 얘기다. 당시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주최 측은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워낙 인기가 높으니 어떤 사고가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특히 호텔을 지키려고 신경을 썼는데 팬들이 호텔 내에서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잘 몰랐는데 팬들이 스타들이 머무는 층 전체를 예약해 버린 것이다.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하하"
방콕=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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