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한민족 始原’ 찾아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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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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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방러 동선 밟아보니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 중앙광장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레닌 두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 낡은 역사적 유물에 꿋꿋이 경의를 표했다. 울란우데=서영수 사진전문기자 kuki@donga.com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수도인 울란우데 중앙광장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레닌 두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이 낡은 역사적 유물에 꿋꿋이 경의를 표했다. 울란우데=서영수 사진전문기자 kuki@donga.com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지난달 말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의 부랴트자치공화국 수도 울란우데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부랴트공화국은 ‘한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여겨지는 바이칼 호수가 있는 곳이다. 주민 100만 명 가운데 25%가량이 한국인과 생김새가 비슷한 부랴트인이다. 최근 부랴트공화국 관광청 초청으로 울란우데를 방문한 길에 김 위원장의 동선을 추적해 봤다.

김 위원장의 종적을 가장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은 세계 최대의 레닌 두상이 있는 중앙광장이었다. 김 위원장을 수행했던 동시베리아문화예술대학의 라다 바이르마 교수(여)는 소상하게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위원장 일행은 울란우데 도착 이틀째인 지난달 24일 오전 10시쯤 1990년대식 메르세데스벤츠 승용차를 타고 중앙광장에 나타났다. 광장 오른쪽에 대기하고 있다가 김 위원장을 맞은 라다 교수는 “그가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이웃집 할아버지같이 친근했다”고 말했다. 악수하는 힘은 강하거나 약하지 않고 평범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라다 교수를 고려인이라고 생각한 듯 한국말로 “조선말을 하십니까”라고 물었다. 라다 교수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조금 벌려 보이며 “조금, 조금”이라고 대답했다. 김 위원장은 “두상의 재료는 뭐냐. 안은 채워져 있느냐”고 물었다. 라다 교수는 “청동으로 만들었고, 내부는 텅 비어 있다”고 설명했다.

200여 m를 천천히 걸어 간 김 위원장은 레닌 두상 오른쪽에서 고개를 30도가량 숙여 목례한 뒤 곧바로 광장 입구에 세워진 그의 차로 돌아갔다. 김 위원장의 걸음걸이는 특별히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광장에서 머문 시간은 15분 정도였다.

이후 김 위원장은 차량으로 20여 분 거리인 ‘메가타이탄’ 슈퍼마켓으로 이동했다. 메가타이탄을 찾았으나 종업원들은 함구로 일관했다. 입단속 지시가 내려진 게 틀림없었다. 김 위원장이 이보다 훨씬 규모가 큰 한국의 대형마트에 들른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도착 첫날 자동차로 3시간 거리인 바이칼 호수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도로가 울퉁불퉁하고 포장이 안 된 곳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타르타스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부랴트공화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투르카 지역의 관광 중심 경제특구 현장을 시찰했고, 유람선을 타고 호수도 둘러봤다.

현장에는 건물 몇 동만이 들어서 있을 뿐 황량함마저 느껴졌다. 아마도 김 위원장은 ‘투자’보다는 바이칼 호수가 한민족의 시원이라는 사실에 호기심을 느껴 생전에 꼭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울란우데=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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