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혼란은 구멍 속으로'별을 쫓는 아이'의 핵심 내러티브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사후세계를 향해 떠나는 여행'이다.
이 같은 내용의 가장 유명한 설화는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저승의 신 하데스를 감동시켜 죽은 아내를 되찾아오지만, 지상세계로 나오기 직전 그만 하데스와의 약속을 깨고 뒤를 돌아봐 아내를 다시 사후세계로 돌려보내고 만다.
'별을 쫓는 아이'는 이와 비슷한 내용인 일본의 '이자나미 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문제는 이 설화에 더 가까운 캐릭터는 주인공 아스나가 아니라 동행자 모리사키 선생이라는 것.
아스나는 지하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는 이유를 잘 모른다. 어머니조차 버리고 그 멀고 험한 사후 세계를 향해 떠난 이유는 "그저 외로웠기 때문"이다. ¤(또는 신)과의 러브 스토리라도 제대로 부여해줬다면 이렇게까지 처치곤란 캐릭터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반면 괴로웠던 군대생활과 아내와의 사별, 아내를 돌려받기 위한 고통스러운 여행,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활용해 신과 거래하는 모리사키의 이야기는 훨씬 극적이다. 모리사키가 생사를 연결하는 절벽 '피니스 테라'를 맨손으로 내려갈 때는 영웅적 기운이 철철 넘친다.
이 같은 모리사키의 절실함은 위험에 쫓기고 남자로부터 보호받고 고난으로부터 도망치면서도 목적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는 아스나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니 갈수록 아스나의 존재감은 희미해지고 모리사키 선생에게 이야기의 중심축이 넘어갈 수밖에.
마코토 감독은 '별을 쫓는 아이'의 홍보차 방한했을 당시 "인생의 비밀과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매력"을 언급하며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등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느끼는 지적 흥분과 아픈 가슴"을 그려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리사키에게서 느껴지는 아픈 가슴을 제외하면, 매력도 지적 흥분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신비의 광석 '크라비스'는 영화 초반 위험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는데, 그 장면 이후 이렇게 사용되는 경우는 단 1번도 없다. 아스나가 수없이 많은 위험에 직면하는데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것. 단지 지하세계 '아가르타'로 진입하는 열쇠로 쓰였을 뿐이다. 또한 아스나의 크라비스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인데, 이에 대한 추가 설명도 물론 없다.
'강력한 군대를 소유한, 지상에서 유일하게 아가르타의 존재를 알고 있는 비밀 조직'이라고 소개된 아크엔젤의 정체는 관객들에게도 끝까지 비밀이다.
이 조직은 초반에 공격 헬기까지 등장시키며 강렬한 임팩트를 선보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아가르타로 진입한 후에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추가 설명 없이 그냥 잊힌다.
지상인과 지하인, 아가르타와 그 뒤를 쫓는 비밀조직 아크엔젤, '카나안'과 '아마우롯 마을', 일반적인 지하인들과 '이족' 등 여러 가지 대립관계가 존재하지만, 제대로 풀어주는 것은 하나도 없다.
아가르타의 입구를 지키는 '케찰코아틀'은 인간형도 있고 동물형도 있는데, 그 차이나 이유도 알 수 없다. "지하세계라서 별이 보이지 않는다"던 아가르타에 매일 아침 찬연한 해가 떴다가 지고, 때때로 비까지 쏟아지는 설정 붕괴에 이르면 한숨조차 나오지 않는다.
본래 '아가르타'는 스리랑카 불교 전설에 나오는 성스러운 지하공간이며, '케찰코아틀'은 멕시코 아즈텍 민족이 믿던 신이다. '아크엔젤'은 '그노시스파'라고 언급되는데, 이는 예수의 제자 베드로와 대립했던 가톨릭 이단 종파다. 생명을 나르는 배 '샤쿠나 비마나'는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신 비슈누의 비행기다.
하지만 이처럼 폭넓게 인용된 전 세계의 신화들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 역시 '그럴듯해서 가져다 쓴' 수준에 그친다.
이렇게 많은 떡밥을 던져놓고 이를 회수하는데 무신경한 것은 관객에 대한 마코토 감독의 직무 유기거나, 능력 부족이다.
별을 쫓아 안드로메다로 달려가는 내러티브를 감안하면, 역시 '감독의 무능'에 손을 들어주게 된다.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매우 긴 116분의 러닝타임은 더욱 불쾌감을 높인다.
▶ '세계관 공감의 실패'…거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시행착오만화칼럼니스트 양세종씨는 "마코토 감독이 판타지물은 처음이다 보니 겪는 시행착오"라면서도 "한 마디로 실망스럽다"라고 평했다.
그는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한 점이나, 관객의 상상에 맡긴다기엔 설명되지 않은 부분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연출 실패라고 볼 수 있다"며 판타지물의 핵심인 '세계관 전달을 통한 공감'에서 완전히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또 마코토 감독은 비록 지브리 스튜디오(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제작사)와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부정하며 "세계 명작 동화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보았던 작품들의 느낌을 참고했다"라는 발언을 통해 그가 '대중적인 애니메이션'의 개념을 '동화적인 것'에 맞추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림만 동화답지 설명이 불친절하다 보니 어린이들은커녕 어른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스토리라인이 엉성하다 보니 팬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양세종씨는 "어린이는 무슨 내용인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전작들보다 훨씬 문턱이 높아졌다"라고 평했다. 재기 넘치던 신인 감독은 과대평가에 물들었고, 지나친 따라 하기는 '예쁜 그림밖에 남는 게 없는' 실패작으로 남았다.
하지만 우리가 판타지 애니메이션의 계보를 이어갈 신카이 마코토의 잠재능력을 본 것은 사실이다.
'역시 그림만큼은 예술'이라는 것은 변함없이 보여줬고, 소재들을 통해 그가 판타지적 애니메이션에 얼마나 목말라 있었는지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감정선 하나로 승부해온 마코토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으로 가는 길목에 섰음을 보았다. 다음 작품에서는 그가 '별을 쫓는 아이'에서 말하고 싶었던 강렬한 추격전, 가슴 절절한 로맨스, 탄탄한 드라마가 잘 버무려져 조화로운 맛을 내길 기대해 본다.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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