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에로영화인 줄 알았는데 ‘골 때리네’…‘에일리언 비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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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10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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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하드코어' '에로 같지 않은 에로' 정체가 뭐야?
●실험적인 영화? VS 키노망고스틴의 영화?
●오영두 감독 "그냥 재미있게 봐 주세요"…과연 재미가 있었는가?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영화 전체가 캐논 EOS DSLR 5D Mark2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때문에 화면의 흔들림은 꽤 있었지만, 열약한 장비로 영화를 보기좋게 완성한데는 큰 박수를 보낼만 하다.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영화 전체가 캐논 EOS DSLR 5D Mark2 카메라로 촬영되었다. 때문에 화면의 흔들림은 꽤 있었지만, 열약한 장비로 영화를 보기좋게 완성한데는 큰 박수를 보낼만 하다. 인디스토리 제공
2010년 2월 첫 번째 장편 옴니버스 영화 '이웃집 좀비'를 선보였던 독립영화 제작단 키노망고스틴(오영두, 류훈, 장윤정, 홍영근)이 2011년 두 번째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를 들고 나타났다. 영화 제작비는 단돈 500만원. '초저예산'인 셈이다.

내용 역시 장난스럽기 짝이 없다. '에일리언 비키니'는 순결한 정자를 얻기 위해 외계에서 온 하모니카(하은정)가 결혼 '순결서약'을 맺은 영건(홍영근)을 유혹하기 위해 온갖 고문을 하면서 육탄전을 벌이는 내용을 골격으로 한다.

외계인이 영건을 고문하는 방법은 참으로 단순하고 유아적이다. 하모니카는 영건과 잠자리를 하기 위해 흥분하게 만들기, 칠판을 손톱으로 긁기, 마늘과 고추 등 매운 음식을 함께 갈은 주스를 코로 마시게 하기, 목 조르기 등과 같은 방법을 동원한다.

여기까지 보면 비키니를 입고 주사기를 들고 있는 여자와 '찌질'한 남자가 그려져 있는 포스터의 느낌을 이어가는 'B급' 에로 영화 같다.

그러나 영화는 러닝타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놀라지 마시라. 이 영화는 무려 일본 유바리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대상 수상작이다.

배우 홍영근은 기자간담회에서 "유바리영화제에서 관객 두 명이 '골 때린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희 영화를 보고 '영화 참 골 때린다'라는 반응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홍영근의 말처럼 이 영화는 정말 '골 때린다'.

▶'에일리언 비키니' 도대체 장르가 뭐야?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 같다. SF, 스릴러, 멜로, 액션 등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어 'SF 스릴러', 'SF 멜로', 'SF 액션'이 모두 어울린다.

사실 영화는 에로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야하지 않고,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게 박력 있지 않으며,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무섭지 않다. 그렇지만 참 독특하고 화끈하며 잔상(殘像)이 남는 영화다.

화끈하면서도 독특한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500만원으로 완성한 영화다

. 적은 제작비 때문에 영화의 80%는 감독의 집에서 촬영했다. 나머지 20%는 거리에서 촬영했다. 사진ㅣ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화끈하면서도 독특한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500만원으로 완성한 영화다 . 적은 제작비 때문에 영화의 80%는 감독의 집에서 촬영했다. 나머지 20%는 거리에서 촬영했다. 사진ㅣ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함께 만든 영화?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남자 주인공 홍영근 덕분에 탄생했다.

오영두 감독은 살이 빠져 몸이 좋아진 홍영근 보고 영감을 얻어 "특이하게 여자가 남자를 괴롭히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대본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촬영장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수집하며 '물 흘러가는 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즉흥적인 장면과 대사도 많다.

그렇기에 영화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하다. 대개 영화제 영화를 좋아하는 '평론가형' 관객들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며 의미를 찾기 위해, 연관성을 찾기 위해 애쓴다. 기자 시사회에서도 장면의 의미를 묻는 질의가 자주 나왔다.

하지만 오 감독은 "그냥 재미있게 보면 된다"고 말한다. 의미 찾는 작업이 무의미해진다.

영화가 다채로운 색채를 띠는 건 감독 개인만의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오영두 감독의 영화가 아닌 '키노망고스틴'의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지도 모른다.

▶오영두 감독은 '시간'을 다루고 싶어 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설화 '술이기'가 자막처리 되어 앤딩 크레딧같이 장엄하게 올라온다.

'술이기'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의 근원 설화다. 이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속에 갔다가 우연히 바둑을 두고 있는 노인을 발견하게 됐다. 나무꾼은 노인이 바둑을 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자네 나무 자루가 썩었군!"이라고 말하는 소리에 놀라 이상하게 여기며 산에서 내려오게 됐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마을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부모님은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 감독은 '술이기'를 삽입한 이유에 대해 "영화를 찍으면서 영향을 받았다. 차원에 대한 개념이 온전히 제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타임머신이라던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서양에서 만들어낸 것 같지만 원래 아시아에도 있었다. 우리가 제일 많이 아는 게 이 시라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의 남자 주인공 홍영근은 "제가 맡은 캐릭터가 '루저'예요. 그것도 '캐루저'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인디스토리 제공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의 남자 주인공 홍영근은 "제가 맡은 캐릭터가 '루저'예요. 그것도 '캐루저'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인디스토리 제공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술이기'가 시간을 다룬 동양 설화라면 서양 신화도 등장한다. 영화 초반부에는 광고처럼 시간을 다룬 한 그림이 등장하기도 한다.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로 그리스 신화를 표현한 작품이다.

사투르누스(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아버지다. 그는 아들 중 한 명에게 하늘나라 권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자신의 아들을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는다. 하지만 제우스는 어머니의 묘책으로 살아남아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사투르누스는 시간을 상징하는데 그가 자식을 삼키는 것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속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 감독은 '시간'을 관객들에게 툭 던지듯이 영화 속에 듬성듬성 담아냈다.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의 영향은 한번 더 나타난다.

영화에서는 남자주인공 영건이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건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고통을 이겨야 한다며 손을 묶고 매질을 한다. 제우스가 살부(殺父)하듯 분노한 영건은 결국 아버지를 목 졸라 죽인다.

이 사건은 싸움도 못할 것 같았던 영건이 외계인 하모니카를 폭행하는 원동력이 됐다. 잠재된 분노를 회상한 영건은 자신을 괴롭히던 하모니카를 무자비하게 때린다.

이상하게도 좀 자극적이다 싶은 장면들은 감독과 연관짓게 된다. 그 만큼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나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리라.

오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웃으면서 "저는 가족들하고 사이가 좋다. 안 좋은 추억은 없다"고 강조했다.

▶갑자기 등장하는 일러스트의 정체는?

'키노망고스틴'은 영화 중반에 일러스트를 삽입하기도 했다. 영화 관계자 측은 '에곤 쉴레 풍의 일러스트'라고 표현했다. 에곤 쉴레(1890~1918)는 오스트리아 화가로 그림이 거칠고 표현방법이 격렬한 것이 특징이다. 그는 주로 직업여성의 누드를 적나라하게 그렸으며, 그가 찬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이 영화는 우주 시간의 역사와 에일리언의 존재에 대한 난해한 설명을 일러스트로 채웠다. 배우들의 연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외계인의 느낌이 나는 다소 기괴하고 거친 '에곤 쉴레 풍의' 일러스트를 선택해 표현 한 것.

그렇다면 많고 많은 일러스트 중에 에곤쉴레 풍의 그림이었을까. 이 질문에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는 키노망고스틴의 대답이 들리는 듯했다.

감독의 진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을 통해 어떤 감정 '기괴함, 놀라움' 등을 느꼈다면 적어도 '키노망고스틴'은 자신들의 방법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단순히 '실험적인 영화' 인가? vs '키노망고스틴만의 영화' 인가?

오영두 감독에게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실험적인 작품이자 다양한 색의 물감을 뿌린 캔버스 같은 작품 같았다. 멜로, 액션, SF, 분노, 일러스트, 음악 등 다양한 요소들을 담았고 시도도 많았다.

영화 '에일리언 비키니'는 하드할 것 같으면서도 결코 하드하지 않았다. 귀엽고 친근하게 엽기적이다. 그런 점들에서 한편으로는 마음과 눈이 편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중간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는 키노망고스틴의 열정만큼 뜨거웠다. 키노망고스틴의 다음 영화는 어떤 스토리와 어떤 장면들로 구성돼 있을지 궁금해진다.

영화 '에이리언 비키니'는 8월 25일 개봉한다. CGV 무비꼴라주 상영관, CGV 구로, 상암, 압구정, 대학로, 인천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동아닷컴 홍수민 기자 sum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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