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2010년 캠코가 매입해준 채권 되사들여야… ‘제2 대란’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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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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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F부실채권 5조2000억 연말부터 만기… 저축銀 폭탄 되나

정부가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저축은행에서 인수한 5조2000억 원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채권이 올해 말부터 순차적으로 만기가 돌아오면서 ‘제2의 저축은행 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저축은행은 바이백(buy-back) 계약에 따라 정부에 팔았던 PF채권을 다시 사야 하는데 채권 95%가 더 부실해졌기 때문이다. 경영난에 빠진 저축은행업계로선 5조 원 규모의 부실폭탄을 떠안게 됐다. 금융계는 정부가 PF 부실채권 만기 상환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상당수 저축은행이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5일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에서 갖고 온 PF 부실채권을 올해 말부터 저축은행으로 순차적으로 되판다. 캠코는 자체 자금과 구조조정기금의 공적자금을 활용해 2008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3차례에 걸쳐 약 5조5000억 원(원금 기준·원리금으로는 6조2000억 원)의 PF 부실채권을 사주면서 3년 뒤에 저축은행에 되파는 바이백 계약을 했다. 이 가운데 3000억 원은 정상적으로 회수됐고 나머지 5조2000억 원이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돌아온다.

장영철 캠코 사장은 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3년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을 저축은행에 되판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올해 말은 그래도 괜찮지만 내년 3월 상환되는 1조2000억 원이 큰 걱정이다. 저축은행들의 고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땜질식 처방에 사용된 공적자금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공적자금으로 부실채권을 사줘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이 장부에서 부실을 완전히 털어내는 구조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저축은행의 경우 부실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자금인 구조조정기금에서 3년간 부실채권을 맡았다가 산 가격 그대로 저축은행이 되사가도록 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정공법 대신 캠코를 동원해 일종의 ‘돌려 막기’를 한 셈이다.

이런 방식은 수조 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저축은행에 투입했다가 손실을 입을 경우 거센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을 염려한 정부가 내놓은 미봉책이었다. 문제는 캠코가 저축은행에서 가져온 PF 사업장 338개에 대해 최근 정밀 실사를 한 결과 정상화가 가능한 사업장은 5.9% 수준에 불과해 나머지 94.1%의 사업장이 더 부실해진 상태로 저축은행에 다시 되넘겨지는 것이다.

더욱이 캠코가 PF 부실채권을 떠안아 준 3년 동안 저축은행 대부분은 부실을 털어내 건전성이 좋아지기보다는 부동산 PF를 늘리며 부실규모가 더 불어난 상황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공적자금으로 한시적으로 PF 부실채권을 가져가 저축은행들이 건전한 것처럼 보이도록 함으로써 사실상 저축은행들이 합법적으로 분식회계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운 셈”이라며 “그 이후에도 저축은행들이 PF 대출을 더욱 늘리는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였는데도 금융당국은 이를 방관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5조2000억 원이 차례로 저축은행에 돌아올 경우 이미 체력이 고갈되고 신뢰가 바닥에 떨어진 저축은행들이 더욱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축은행 부실문제는 이제 시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며 “서민금융기관이라는 이유 등으로 자기가 책임을 맡고 있을 때는 저축은행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고위 경제 관료들의 정치적 계산과 위기 때마다 일시적으로 위기를 넘기려는 ‘언 발에 오줌누기식’ 정책들이 누적되면서 훗날 더 큰 위기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해 새롭게 조성된 5조 원의 구조조정기금은 기존 바이백 방식이 아니라 과거처럼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부실채권을 완전히 매입하는 정공법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올해 말부터 저축은행으로 돌아오는 부실채권 가운데 일부는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정부가 재연장을 검토하는 시장안정과 구조조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5조 원의 구조조정기금을 만기가 돌아오는 PF부실채권의 재연장에 투입할지는 아직 결정이 되지 않았으며 시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검토할 내용”이라고 말했다.

○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3월 공적자금 집행현황에 따르면 저축은행에 1997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투입된 공적자금은 8조5000억 원이다. 은행(86조9000억 원), 보험(21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덩치(자산 규모)에 비하면 상당한 규모다. 업종 자산규모(지난해 말 기준) 대비 공적자금 투입액 비율의 경우 저축은행은 9.8%로 은행(5.2%)과 보험(4.2%)의 배에 근접하는 수준이다. 여기엔 2003년부터 예금보험공사가 금융회사의 보험료로 저축은행에 예금대지급을 해준 3조 원이 빠져 있으며 이를 합치면 11조 5000억 원에 이른다. 예보는 2003년 이전에는 예금보호기금채권을 발행한 공적자금으로 예금대지급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각 금융권의 보험료로 예금대지급과 순자산부족액을 메워주고 있다. 이 자금도 나중에 손실이 생기면 결국 정부가 메워줘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공적자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은행과 보험이 2000년대 이전 대부분 집행이 마무리된 반면 저축은행에 대한 자금 투입은 앞으로도 계속될 진행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3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전일저축은행을 포함해 16개의 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서 예금대지급 규모가 크게 늘어나 예금보험기금 안의 저축은행 계정은 2조9000억 원의 적자를 냈다. 금융위는 저축은행 계정이 바닥나자 은행 보험업계에서 자신들 보험료의 45%를 의무적으로 출연하는 방식으로 7000억 원 규모의 저축은행 특별계정을 만들었고 이를 담보로 14조 원가량의 실탄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1월에 삼화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된 데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7개 저축은행이 무더기로 문을 닫으면서 이마저도 빠듯한 실정이다. 예보는 추가로 저축은행 부실이 생기면 현재 확보된 보험료로 대처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저축은행 계정의 적자 해소 시기는 당초 예정된 2025년보다 훨씬 뒤로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정부의 공적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3월에 2000억 원의 예산을 저축은행 특별계정에 지원해주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추가경정예산도 어렵고 예비비로도 지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저축은행에 얼마나 공적자금이 더 들어갈지 솔직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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