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박현모]세종에게 배우는 재난대처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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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대지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 사고 초기에 도쿄전력의 안이한 대응과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 부재를 보면 ‘정말 선진국 일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눈을 돌리면 우리나라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100일 이상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구제역 사태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을 보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호칭이 무색해진다. 수만 명이 사망 및 실종되고 수백만 마리의 동물을 생매장하고도 그 교훈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후세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를 무어라 평가할 것인가.

“변변치 못한 내가 왕이 되어서 홍수와 가뭄이 해마다 그치지 않고, 백성들은 여기저기를 떠돌며 근심과 고통 속에 지내고 있다. 그 죄는 실로 나에게 있다. 마음이 아프고 신민들을 볼 낯이 없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부디 그대들은 나라에 도움 되는 말이라면 조금도 꺼리지 말고 직언하라.” 1423년 심각한 봄 가뭄으로 강원도 등지에 대규모 이재민이 속출하자 세종이 모든 신료에게 당부한 말이다.

여기서 세종은 먼저 ‘부끄럽다’고 말하고 있다. “비록 약으로 쓸 한잔의 술이라도 결코 올리지 마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부족한 자신이 왕이 되어 가뭄이라는 ‘하늘의 꾸짖음(천견·天譴)’을 받게 되었다며 모든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렸다. 사태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만을 따져 마지못해 책임을 인정하는 오늘날의 위정자들과 달리 세종은 모든 일의 결과를 왕 자신의 탓으로 여기는 깊은 책임의식을 갖고 있었다.

가뭄 닥치자 “모든 게 나의 不德 탓”

다음으로 그는 “나라에 도움 되는 모든 말을 직언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왕 자신의 허물을 비롯해 시행 중인 정책의 잘잘못과 백성들의 어렵고 힘든 상황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불과 사흘 만에 조정의 모든 관리가 부처별로 모여 ‘가히 시행할 만한 조건’을 갖춘 60조목의 아이디어를 냈다. 세종은 그것을 친히 재단(裁斷)한 뒤 해당 부처에 내려 쓸 만한 것은 시행하도록 지시했다. 스스로 소식(疏食)을 하면서 나라에 도움 되는 말을 간청하는 세종의 태도도 인상적이지만 그 간청이 내려진 지 며칠 만에 각종 아이디어를 내고, 그중 쓸 만한 것을 시행하는 정책 추진의 효율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종은 시행하게 될 정책을 나라 백성들에게 알리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출신 지역을 가려서 음식을 나눠주는 정부의 구휼책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이 많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세종은 “이제부터는 어느 곳에서 오든지 묻지 말고 마음을 다해서 구휼하고, 호적에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유를 묻지 말고 모두 다 진휼하되, 기근 구제가 끝나면 그 문서를 모두 불태워서 인심을 편안하게 만들라”고 말했다. “매일 일을 의논할 때는 진휼하는 일을 가장 먼저 아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이 구휼 방침을 급히 각 지역의 백성들에게 소상히 알려 궁촌 벽지의 백성들까지도 고루 알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라”고 수령들에게 하명했다. 세종은 이처럼 직언을 듣고 나랏일을 널리 알리는 데 탁월한 소통의 군주였다.

요즘처럼 소통이란 말이 자주 쓰인 적이 있나 싶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소통’을 찾아보면 ‘생각하는 바가 서로 통함’이라고 되어 있다. 훈민정음 서문에서도 소통이란 ‘자기 뜻을 상대방 마음에 사무치게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절실히 전달하는 차원의 것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설문해자’를 보면 소(疏)란 글자는 두 발(疋=足)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주어진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流) 모습을 뜻한다. 두 발이 간격 없이 걸어가면 넘어지고 말듯이 건설적 비판 없는 획일화된 회의는 위험하다는 의미다. 최종 결정권자를 향해 일이 잘못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집요하게 지적해서 일을 성사시키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소통정치의 본질인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조선시대의 중요한 소통 수단의 하나인 상소(上疏)의 의미 역시 범상히 지나칠 수 없다. 궁촌 벽지의 나무꾼과 꼴 베는 아이들의 거친 말 중에서도 나라에 쓸 만하다면 왕에게 올려 바치는 글이 곧 상소이기 때문이다.

직언 청하고 구휼대책 즉각 시행

‘단 한 해도 가뭄과 홍수가 없는 때가 없었다’는 실록의 기록처럼 세종은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잠시도 마음 놓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세종이 취한 가장 우선적인 대응은 건설적 비판의 소리에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그는 작은 기상이변만 생겨도 마치 기회를 만났다는 듯이 직언하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일단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는 온 마음을 기울여 대책을 세워 추진하곤 했다. ‘자연재해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데도 그 힘을 다하지 않아서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잃어서는 안 된다면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도록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유례없는 대재앙을 맞아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전력을 기울여 복구하는 자세, 600여 년 전에 세종이 발휘했던 리더십을 한국과 일본에서도 만나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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