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북스]루저스피릿⑬ 대단한 땅콩들, 크라잉 넛 이번엔 ‘책’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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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0일 12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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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Z까지 키워드로 정리한 데뷔 15년…
● '어떻게 살 것인가'-'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거 부딪쳐!'

데뷔 15주년 맞아 책 펴낸 크라잉넛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전영한 기자
데뷔 15주년 맞아 책 펴낸 크라잉넛 책 제목은 \'어떻게 살 것인가\'. 전영한 기자
지난 연말에도 전국 방방곳곳 노래방에서는 '말 달리자'가 울려 퍼졌다. 20대 신입사원이건 40대 부장님이건 모두 마이크를 부여잡고 방방 뛰며 "닥쳐"를 외치는 풍경은 한국에서 매우 친숙한 모습이 됐다.

노래를 만들고 부른 크라잉 넛은 그 노래만큼이나 대중에게 익숙한 존재다. '말 달리자'는 물론 '밤이 깊었네' '명동콜링' '좋지 아니 한가' '비둘기' 등 여러 히트곡을 냈고, 기획사 없이 활동하는 인디밴드로선 유일하게 10만장 이상의 앨범을 연속 판매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 1995년 서울 홍대 클럽 '드럭'에서 파격적인 '조선펑크'를 선보였던 작은 땅콩들은 이제 한국 가요계에서 "주류를 넘는 비주류"로 자리매김했다.

크라잉 넛이 지난해 말 데뷔 15주년을 기념한 책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놓았다. 서교동에 위치한 일명 '토바다' 스튜디오를 찾았다. 다만 리더인 한경록은 지난 밤 "너무 달린" 후유증으로 인터뷰에 참석하지 못했다.

▶Amusement(재미)

"음악을, 밴드를 하는 이유? 재미있기 때문이죠."

▶Book(책)

"저희가 책을 내니까 다들 의아해 하시더라고요. 저희 공연을 보러 오셨던 출판사 관계자 분이 제안해서 내게 됐어요. 저희가 직접 쓰기엔 글발이 없어서 인터뷰 식으로 진행했고요. 젊었을 때 누드사진 하나 내는 것처럼 저희도 책을 내게 된 거죠.(웃음) 사실 책 제목 '어떻게 살 것인가'는 출판사에서 지은 건데, 처음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갈수록 정이 가요. 해석이 다양하죠. 인디밴드 니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책을 살 것인가…."

▶Crying nut(크라잉 넛)

"인수 형을 제외하고 나머지 멤버는 초중고교 동창이에요. 키도 고만고만한 동네친구들이 모여서 놀다가 크라잉 넛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결정적인 계기는 중학교 3학년 수학여행이었어요. 당시 좀 앞서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전자기타를 딱 친 거예요. 당시 저희도 음악을 좋아했지만 전자기타를 친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여자애들이 그 친구를 보고 '와아~' 이렇게 환호하고. 그때 생각했죠. 저거다! 나도 할 수 있다!"

▶Drug(공연장 '드럭')


"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지만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한 것은 '클럽 드럭'에서부터였어요. 1996년에 '말 달리자'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조금씩 입소문이 나면서 그 후 2~3년 정도가 지난 후에 유명해진 거죠."

▶Entertainment management agency(연예기획사)


"'말 달리자'로 인기를 얻으면서 연예기획사에서 제안이 오기도 했어요. 보컬 윤식이만 바꿔서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요. 거절하고 나중에 명함을 찢어 버렸어요. 만일 그렇게 했다면 나중엔 바뀐 보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바뀔 거라는 걸 알았거든요. 실제로 그런 기획사에 들어가서 해체된 밴드들이 많아요. 투자한 만큼 돈이 안 되니까 아예 공연을 못하는 거예요."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 전영한 기자
크라잉넛의 보컬 박윤식. 전영한 기자

▶Friendship(우정)

"멤버교체 없이 15년간 쭉 같이 한 건 가장 큰 자랑이죠. 심지어 군대도 같이 갔어요.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 같아요. 관계유지의 비결은? 술과 시간이요."

▶Goal(목표)


"늙어서까지 신나게 음악 하는 뮤지션이죠. 만수무강하고 무병장수해서 이렇게 막살아도 오래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웃음)"

▶Hardship(고난)


"사실 초기엔 늘 위기였어요. 공연하는 클럽이 월세를 내지 못해서 쫓겨났을 땐 공연을 하지 못하기도 했죠. 돈을 벌려고 우유배달도 하고, 카드도 그렸는데 물감만 강매 당하고 끝났죠."

▶Indie(인디)

"공연문화가 취약하다보니 많은 인디밴드들이 돈을 못 버는 게 현실이긴 해요.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기 보단 음악을 하기 위해 투잡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게 대부분인데 나중엔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좀 힘들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밴드에 대한 편견은 좀 없애고 싶어요. 평생 돈도 못 벌면서 가난하게 살 거라는 고정관념이요. 저희는 그렇지 않고 즐겁게 음악을 하면서도 돈을 벌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꾸준히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요."

▶Job(직업)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으니까, 뮤지션이라는 직업에 만족하죠. 무언가를 하기 위해 공부를 하기보다, 좋아하는 그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또 돈을 버는 건 좋지만 나중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지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회의적이에요. 대부분 그렇게 나이가 들게 되면 그 일을 못하게 되거든요."
데뷔 15주년 맞아 책 펴낸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이상면. 전영한 기자
데뷔 15주년 맞아 책 펴낸 크라잉넛의 기타리스트 이상면. 전영한 기자

▶Korean Pop(한국 가요)

"한국에는 록 음악이 너무 없어요. 사실 록은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에는 그보다 아이돌만 너무 많은 거 같아요."

▶Liquor(술)

"크리스마스 때 아이가 제 양말에 선물을 넣었다고 해서 보니까 편지가 있더라고요. '아빠, 돈 줄 테니 술 좀 끊어라.' 한참을 웃긴 했는데 약간 충격이었어요.(웃음) 멤버들끼리 술을 많이 마시는데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명이 취하면 누구 하나가 깨서 진정시킨다는 거죠."

▶Mannerism(매너리즘)

"음악을 하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슬럼프도 있죠. 하지만 그게 음악을 그만둘 이유는 못돼요. 이 음악이 지루하면 다른 음악 하면 되잖아요. 즐기려 한다면 어떻게든 즐길 수 있는 게 음악이거든요. 아침, 점심, 저녁 다 먹지만 먹는 건 지루하지 않잖아요?"

▶Novice(초심)

"술 먹다가 우리 지금 너무 안이한 것 같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얘길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옛날에는 만날 술 먹었지, 사고 쳤지, 연습도 안했지…. 굳이 초심으로 돌아갈 필요 없겠더라고요.(웃음)"

▶Optimism(낙관주의)

"먼 미래를 바라보기보다는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집중했어요. 그렇게 15년이 됐고요."

▶Principle(원칙)

"글쎄? 마약은 안한다는 거? 그리고, 최소한 가식적인 사랑노래를 하진 않으려고 해요. 하다하다 안되니까 사랑노래나 써야지,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요. 또 트렌드를 만들되 따라하진 않는다는 것."

▶Que sera sera(될 대로 되라)

"아마 다른 분들보다 10배는 더 음주가무를 할거예요. 그런데 얼마 전 건강검진을 했는데 말짱하더라고요. 저희는 회사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런 거 같아요."

▶Role Model(롤모델)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할아버지들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따뜻한 지방에 살면서 좋은 음악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또, 레미라고 1945년생이신데 1977년에 모터헤드 결성하셔서 꼬박꼬박 앨범내시면서 정정하게 음악하시는 분이 있어요. 음악은 변한 게 없지만.(웃음) 그렇게 놀 수 있으면 좋겠어요."

▶Strategy(전략)

"인디밴드로서 가장 큰 마케팅 전략은 공연을 통해 알리는 거죠. 감동을 받으면 다시 오게 되고, 그렇게 입소문을 내는 것."
10년전인 2001년 청계청 입구에서 "세상을 다 가져라"고 외치며 공중으로 활짝 뛰어 오르는 `크라잉 넛`. 그들의 장점은 언제나 한결같은 '꾸준함'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10년전인 2001년 청계청 입구에서 "세상을 다 가져라"고 외치며 공중으로 활짝 뛰어 오르는 `크라잉 넛`. 그들의 장점은 언제나 한결같은 '꾸준함'이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Thirties(30대)

"10대 후반에 밴드를 시작해서 30대가 됐어요. 사실 로커에게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Uneasiness(불안)

"사실 '말 달리자'가 히트한 뒤에 한동안 부담이 크긴 했었죠. 하지만 역시 시간을 보내면서 노하우가 생기다 보니 불안감은 사라지더라고요. 요즘 고민은 너무 안정적이라는 거예요. 음악도 안정적인 음악만 나올까봐 걱정이 되는데 앞으로 이게 저희의 과제가 될 수 있겠죠."

▶Variation(변화)

"최근에 나온 앨범에 초창기에 지었던 곡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팬들 중에는 크라잉넛의 음악 스타일이 변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쨌건 그때그때마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게 더 나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늙고 쇠약해졌다' 혹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다'보다는 변한 게 나은 거 같아요.(웃음)"

▶Wish(바람)

"꼭 록이 아니더라도 저희 같은 밴드들이 많이 생기고 다양한 음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existence(존재)

"저희 팀이 뭐라고 기억되기 보단, 그냥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누군가가 우리를 굳이 끄집어 내 기억하기 보단, 그냥 존재하고 싶어요."

▶Youth(젊음)

"저희 책 부제가 '좋아한다면 부딪쳐 까짓거 부딪쳐!'거든요. 그 얘길 하고 싶었어요. 물론 젊었을 때 도전해서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럼 다른 걸 할 수 있잖아요.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있으니까 다음에는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실패하더라도, 실패하기까지 배운 게 반드시 있죠."

▶Zealousness(열정)

"밴드하기 잘했다고 생각할 때? 글쎄 뭐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어느 정도 후회한다는 거 아닐까요. 저희는 늘 밴드를 잘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 안하는 거 같은데.(웃음) 무엇을 이루기 위해 음악을 하기 보단 음악을 해서 그냥 즐거워요. 그래서 철없다는 소리도 듣지만 앞으로도, 50, 60살이 돼도 그렇게 철없이 음악을 할 거 예요."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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