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벗었어요. 헤어졌어요”…‘나쁜 놈이 더 잘 잔다’ 김흥수 솔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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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0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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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배역 내가 봐도 모질게 막장"
● 처음으로 전신 노출을 감행한 소감은 "해냈어!"
● 30개월 사귄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해


7일 오후 1시 서울 왕십리의 한 영화관 남자 화장실, 189㎝ 큰 키에 범상치 않은 눈빛을 한 청년이 화장실 문을 잡고 에지 있는 '모델 포즈'를 취했다. 지금 서 있는 곳이 화장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카메라 셔터가 눌러질 때마다 그는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수시로 자세를 바꿨다.

신작 누아르 영화 '나쁜 놈이 더 잘잔다'에서 '막장 청춘'으로 변신한 배우 김흥수(27). 그는 데뷔하기 전 큰 키와 서구적인 외모로 패션계에서 활약하는 모델이었다. 사진 촬영을 끝낸 그는 온몸에 주었던 힘을 풀고 활짝 웃으며 기자를 맞았다.

▶ '재수 없는 놈' 윤성, 안 해 본 역할이라 더 설렜다

빚만 남기고 감옥에 간 아버지, 고등학생 초등학생 철부지 두 동생, 허물어질 것 같은 재개발 달동네 집…. 김흥수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주인공 윤성을 연기했다.

캐나다 이민을 꿈꾸며 어렵게 모은 밑천을 사기도박으로 날린 그는 마지막 인생역전을 위해 건달 출신 포르노 배우 종길(오태경), 가짜 연예인 매니저 영조(서장원)와 총을 들고 은행을 턴다. 여기에 스타를 꿈꾸는 윤성의 여동생 해경(조안)까지 얽히면서 영화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동안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해신', '천하무적 이평강'을 통해 막내 동생 같은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줬던 그를 떠올리면 대단한 연기 변신이다. 김흥수는 윤성에 대해 "진짜 막장인 친구"라며 "안 해 본 역할이라 더 설렜다"고 웃었다.


- 인생의 벼랑 끝에 선 위태로운 청춘 윤성을 연기했어요.

"2시간 만에 나쁜 놈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어요. 윤성이는 그다지 착한 인물도 무서운 인물도 아닌데 상황이 그를 극적으로 몰아가서 변하게 해요."

- 예전 배역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변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부잣집 도련님 같은 이미지도 아니지만, 진짜 막장인 친구를 연기해서 좋았어요. 새로운 옷을 입어보는 느낌이랄까. 촬영장에 갈 때마다 설렜어요."

- 윤성을 연기하면서 어떤 면을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나요?

"윤성이는 '재수 없는 놈'이에요. 그리 착한 놈도 아니면서 모든 짐을 짊어지려 하고 착한 척해서 재수가 없어요. 그 때문에 일이 더 어설퍼지고 꼬여요. 결국,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나쁜 본성이 나오는 거죠. 누구나 악한 면이 있으니까 공감이 갔어요. 윤성이가 변해가는 과정을 연기하는 게 가장 중점이었죠.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모든 걸 다 잃은 윤성이가 피칠갑을 하고 울다 웃다 쓰러지는 연기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 "포털 사이트에 적힌 '변신맨' 별명 부끄럽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처음으로 뒤태 전신 노출을 감행했다. 여고생 동생 해경(조안)이 조직폭력배에게 납치됐다는 전화를 받고 총기를 구하기 위해 장물아비인 포르노 업자의 비디오에 출연하는 대목에서다. 카메라 앵글은 거칠고 노골적이었다. 첫 노출신이 이렇다면 남자배우라도 부담스러울 만했다.

- 처음으로 베드신을 찍었는데 어렵거나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막상 다 벗고 촬영해보니 새로운 걸 해냈다는 생각에 즐거웠어요. 베드신은 촬영이 다 끝날 때쯤, 전날 피범벅인 채로 밤샘 촬영을 하고 아침에 대중목욕탕에 가서 피를 씻어내고 돌아와 바로 찍었어요. 어쩌면 베드신을 연기하는 동안에는 '이걸 빨리 끝내야지' 라는 생각만 했을 수도 있죠."

- 작품을 연출한 권영철 감독은 흥수 씨에 대해 "워낙 성실함으로 똘똘 뭉쳐진 배우", "어떠한 캐릭터든 스펀지처럼 흡수할 준비가 돼 있다", "건설적이고 창조적으로 캐릭터를 만들어 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배우"라고 칭찬했어요.

"그런 얘기를 제게 직접 해주시지. 하하. 농담이고요. 과찬이에요. 이번 작품은 준비부터 촬영까지 딱 두 달 걸렸는데 그 동안에 계속 서로 살 부대끼면서 소통했어요. 그러다보니 연기 변신이 더 수월했어요."

- 그러고 보니 포털 사이트에 소속사가 올린 흥수 씨 별명이 '변신맨'이에요.

"(부끄러운 듯) 제발 '변신맨'이라고 하지 마세요. 고등학생 때 인터뷰하다 나온 말인데 그걸 아직까지…. 정말 아무 생각 없을 때 한 얘긴데."

- 영화에 또 다른 '막장 청춘'으로 오태경, 서장원, 조안 씨가 나왔어요. 또래 배우라서 경쟁의식도 있을 법 한데요.

"장원 씨와 저는 1983년생 동갑내기이고 태경 형과 조안 씨는 저희보다 한살 더 많아요. 넷이 한상 붙어 다니면서 친구처럼 즐겁게 촬영했어요. 태경이 형은 굉장히 거칠고 강하게 연기했어요. 저까지 비슷하게 연기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얘기를 나눴고 더 친해졌죠. 장원 씨는 제게 '선배, 잘 좀 가르쳐줘'라며 자주 의견을 물어왔죠. 조안 씨는 남의 말도 잘 듣고 여배우답지 않게 활달해서 촬영장 분위기를 주도했어요."



▶ 인터뷰 이틀 전에 결별…그래도 꿋꿋한 흥수 씨

김흥수는 1999년 KBS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한 11년차 배우다. 그는 "작품에서 이런 역할 저런 역할 해보면서 잘해보려고 발버둥치는 과정이 즐겁고, 배우인 내가 좋다"고 말했다.

"우연히 모델을 하다가 드라마 출연이라는 걸 하게 됐고 어느 순간 연기가 좋아졌다는 얘기를 듣게 됐어요. 그 후로는 더 잘하고 싶어서 저 자신을 바꿨습니다. 원래 소극적이었어요. 말도 잘 못하고. 전형적인 A형 성격이었죠. 여전히 연기는 어렵지만, 도전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세종대학교 영화예술학과를 중퇴했어요. 공부에 대한 생각은 더 없나요?

"내년쯤 재입학할 예정이에요. 2002년 작품이 몰릴 때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거라 미련이 많아요. 최근 학과 교수님께서 다시 학교에 나오라고 권유도 했고 저 또한 1학년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내친 김에 장학금을 타보면 어떨까요? 1학년 때는 공부 잘했거든요."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는 영화 제목과는 달리 김흥수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 30개월간 사귀었던 '일반인' 여자 친구와 며칠 전 헤어졌기 때문이다.

"토요일(5일)에 헤어졌어요. 이틀 밤을 못 자서 정신이 없어요. 자다가도 분해서 다시 일어났어요.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요. 충격이 커서."

- 잠을 설칠 정도면 다시 만나지 그래요? 영화에서는 나쁜 놈인데 정작 흥수 씨는 소심한 A형이구나. 기사에 써도 되나요?

"(체념한 듯)그냥 뭐. 쓰세요. 상관없어요."

- 이상형이나 말해 봐요. 혹시 주변에 소개해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상형은 손과 발이 가늘고 길고, 어깨선도 예쁘고, 얼굴도 미인이고, 성격도 좋고, 그리고 또…."

인터뷰를 마친 김흥수는 영화 홍보용 팸플릿에 '기자 누나에게, 행복하세요'라고 사인을 해줬다. 기자가 "원래 인터뷰한 배우와는 기념사진을 찍는데 흥수 씨는 얼굴이 너무 작아서 비교될까 봐 못 찍겠다"고 하자, 그는 "에이 왜 사람 차별해"라며 기자를 카메라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모델 포즈 대신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리며 밝게 웃었다.

▶ '나쁜 놈이…'는 어떤 영화?

그가 주연한 '나쁜 놈이…'는 24일부터 극장과 인터넷TV(IPTV)를 통해 관객과 만난다. 착하게 살아보려던 주인공이 주변 여건이 억수로 나빠 파멸해 간다는 설정은 홍콩영화 '열혈남아'와 닮았다. 막장 청춘들이 사기치고 훔치고 도망치는 과정은 이완 맥그리거의 '트레인스포팅'을 떠올리게 한다. 범상치 않은 영화의 제목은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 감독의 고전 영화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惡い奴ほどよく眠る, 1960)에서 따왔다.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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