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 ]盧統의 대못, MB의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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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0일 2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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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천천히 갈 수도 있었는데 왜 서두르느냐. 내 임기 안에 첫 삽을 뜨고 말뚝을 박고 대못을 박아 버리고 싶은 것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9월 12일 제주 혁신도시 기공식에 참석해 축사에서 한 말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곳곳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아둔 ‘대못’의 처리를 놓고 내전(內戰)에 버금가는 국가적 진통을 겪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주 TV로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세종시 건설계획의 수정과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지만, 야권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민주당과 자유선진당은 충청지역을 순회하는 대규모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충청도에선 연일 정부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종시는 2002년 대선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으로 태어날 때부터 이성적 토론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는 포퓰리즘의 산물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 후보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준 충청표가 오늘날까지 여야 정치권의 발목을 잡고 있다. 2005년 3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에 손을 들어준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10월 24일 충남 태안 기업도시 기공식에서 “행정수도 문제에 대해 다음 정권을 운영해갈 사람들이 명백한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고 압박했을 정도다.

노 전 대통령도 정부부처 이전이 국가적 비효율성과 자족성 부족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 자신도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부산 유지들이 해양부의 부산 이전을 건의하자 “장관 취임 한 달 동안 39번의 외부일정을 소화했는데 3분의 2는 국회 정당 국무회의 청와대 방문이었다”며 행정부처의 지방이전에 부정적 견해를 밝힌 일이 있다. 그랬던 노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수도권의 공공기관을 지방 도시들에 분산 이전시키는 혁신도시를 밀어붙인 것은 좌파 정권의 지속을 위해 확실한 기대이익으로 뭉친 지역 주민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명박 정부가 행정효율성이나 경제성을 이유로 ‘이명박표 세종시’나 ‘5+2 광역경제권’을 내놓으려 해도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반대세력의 벽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심리학)는 “똑같은 것을 놓고 한쪽은 악마로, 한쪽은 천사로 바라보는 ‘전경(全景)과 배경의 역전’ 현상이 계속되는 한 견해차를 좁히기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 대통령이 앞장서 야당과 국민을 설득하고, 그에 앞서 여당 내부부터 설득하고 대화하는 작업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박 전 대표와 야당도 민심의 가변성을 염두에 두고 좀 더 긴 안목에서 ‘세종시-4대강 정국’의 출구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완승을 추구하며 상대방의 백기투항을 받아내기 위해 국회를 공전시키거나 난장판으로 만드는 일만은 않겠다는 대국민 서약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세종시와 4대강을 2012년 대선을 겨냥한 ‘회심의 한방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이 끌려간다면 혼란은 확대되고 모든 이슈가 세종시와 4대강에 빨려드는 ‘블랙홀’ 현상을 막을 수 없다. 현재 권력이 ‘백년대계’에 대한 고뇌 끝에 내렸다는 결단을 과거 권력과 미래 권력이 함께 막아서는 나라에선 건강한 토론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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