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입법권한 존중… 절차 문제엔 “더이상 변칙 안돼” 메시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 헌재 결정 내용-의미
신문법 6명 - 방송법 7명, “중대 하자 아니다” “국회가 해결할 일”
동영상 조사 - 공개변론 거쳐… 이례적으로 100일만에 신속 결정

‘국회 표결 과정에서 법안 심의·표결권한이 침해됐지만 가결이 선포된 법안 자체가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 7월 22일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난투극을 벌인 가운데 통과시킨 신문법과 방송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9일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언뜻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다. 그러나 헌재 재판관 9명이 내놓은 판단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의문은 쉽게 풀린다. 재판관들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어 야당의 법안 무효 확인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나는 ‘하자가 있더라도 법안 자체가 무효라고 할 만큼 중대한 하자는 아니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법안 무효 여부는 헌재가 직접 판단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논리다.

○ “법안 무효 선언은 권력분립 훼손”

헌재가 절차적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법안을 무효화하지 않은 배경에는 이미 공포된 법안에 대해 헌재가 무효 선언을 하는 것은 권력분립의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또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은 ‘파행적인 투표 행위가 빚어진 데에 야당도 원인을 제공했다’는 인식을 내비쳤다. 재판관 9명 가운데 5명은 결정문에서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거나 한나라당 의석에 앉아 있었고, 나아가 적극적으로 반대투표 행위를 하는 이례적인 투표 행위가 다수 확인됐다”고 명시했다.

법안의 효력 부분에 대해 재판관들의 견해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우선 민형기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은 ‘하자가 없었거나, 하자가 있더라도 중대한 하자는 아니다’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들 재판관은 “신문법 표결과정에서 확인된 대리투표는 3건에 불과해 실제 표결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권한침해 행위가 있었지만 헌법 49조에 규정된 ‘다수결의 원칙’을 위배한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두 번째로 이강국 이공현 김종대 재판관은 ‘권한침해가 있더라도 이는 국회에서 해결할 사안이다’라는 의견을 냈다. 법안의 효력 여부를 따지는 것은 국회의 몫이며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헌재가 직접 나서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견해는 종전의 헌재 결정에서 없었던 새로운 견해다. 세 번째로 조대현 송두환 재판관은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법안도 무효”라는 견해를 내놨으나 재판관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김희옥 재판관은 신문법에 대해선 ‘무효’, 방송법에 대해선 ‘유효’ 의견을 냈다.

○ 국회의 고질적 파행에 경고

헌재가 국회 표결과정에서의 권한 침해를 인정한 것은 법안이 무효냐, 아니냐를 따지려 한 것보다는 오히려 국회를 향한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헌재는 신문법, 방송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대리투표, 질의·토론 절차의 생략,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등의 위법적 행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는 야당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 같은 판단에는 툭하면 싸움판을 벌이는 국회의 고질적인 행태에 어떤 식으로든 제동을 걸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게 헌재 측의 설명이다. 노희범 헌재 공보관은 선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헌재가 권한 침해를 인정한 것은 다시는 법안의 변칙적 처리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무를 지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 소모적 논쟁 끝내려 신속히 결정

헌법재판소는 국회 회의록만을 갖고 판단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동영상 조사, 공개변론 등 적극적인 증거조사를 벌인 끝에 3개월 만에 법안의 효력을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헌재의 사건처리 기간이 올해 마무리된 사건을 기준으로 평균 587일 걸리는 데 비해 이번 사건은 사건 접수일로부터 정확히 100일 만에 신속하게 이뤄졌다. 통상적인 사건의 경우 연구관 1명이 맡아서 법리 검토를 하지만 이번에는 수석부장연구관을 팀장으로 하는 공동연구팀을 꾸렸다. 9월 한 달 사이 두 차례나 공개 변론을 열고 별도로 동영상 증거 조사까지 한 것도 이례적이다.

헌재가 결정을 서두른 것은 방송법 개정안이 다음 달 1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에 법 시행 이전에 결론을 내려 불필요한 논쟁을 하루빨리 끝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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