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지 사건? 성폭행당한 지적장애아 돌본 초교 교사의 절규

  • 입력 2009년 10월 5일 10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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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가명)이 사건'으로 국민적 분노가 커진 가운데 지적장애 제자의 성폭행 사건 해결에 나섰다가 현실에 절망했다는 한 초등학교 교사의 글이 인터넷 올라와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조회수 10만 건에 1500여건의 댓글이 달린 이 글을 누리꾼들은 '제2의 나영이 사건' 혹은 '은지 사건'으로 명명하며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경북 포항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지난 30일 밤 다음 아고라에 '나영이를 보고…성폭행당한 제자 돕다 지쳐 있는 초등교사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해 1월 지적장애인인 제자 은지양(가명·당시 11살) 모녀가 마을 남성들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해온 것을 알게 된 김 교사의 체험적 수기였다.

그는 "성폭행당한 아이를 보호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다 했다"며 "여성회, 아동보호센터, 경찰서, 성상담소, 전교조, 심지어 창원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도 가고 청와대에 민원도 올리고 방송에까지 나왔지만 해결이 안 됐다"고 말했다. 그 뒤 김씨에게 돌아온 것은 '문제교사'라는 낙인뿐이었고 김씨는 허술한 사회안전망과 사회의 무관심에 좌절감만 느껴야 했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또 "나영이 사건은 불행 중 다행으로 증거가 남아 있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기에 12년 형이라도 받은 것"이라며 "바다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처럼 많은 성범죄 사건이 피해자만 울리고 없었던 일로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이 교사는 2008년 초부터 성폭행 당한 반 아이를 돕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 성폭행 사건의 처리 관행과 성폭행에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점, 그리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성폭행 고발과 피해자만 울리는 것으로 끝나는 성폭행 사건의 면면까지 낱낱이 고발했다. 특히 간판만 내건 지원단체가 없었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밝혀 충격을 더했다.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무관심에 절망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도 꺾여 가고 있다고 밝힌 그의 글에 누리꾼들은 선생님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성폭행범의 처리 관행을 비난하는 댓글을 달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은지 사건'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포항 모 초등학교 교사의 글 ***

"08년 초부터 성폭행 당한 반아이를 돕다가 너무나 허술한 사회 안전망과 무관심에 절망을 느껴 삶의 의욕마저도 꺾여 가는 초등하교 교사입니다.

...오늘도 친아버지에게 10살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여중생을 만나고 오면서 도대체 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보호하고 버티어야 하나 하는 심한 회의가 밀려오더군요,, 혹자는 얘기하겠지요, 경찰에 신고하지 왜 그걸 떠맡아 고민하냐고? 안 겪어본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겁니다.

성폭행을 당한 우리 반 아이를 보호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다 했습니다. 여성회, 아동보호센터, 경찰서, 각종 성상담소, 해바라기 아동센터, 전교조, 참학, 장애인 부모연대 등등 심지어는 창원에서 열린 세계 인권대회도 가서 이런 성범죄에 대해 중요 사명을 띤 여성단체들도 만나보고 청와대에 민원도 올리고, 방송까지 나왔지만, 해결이 안 되더군요.

법적 신고의무자로서의 역할을 한 저에게 교육청이나 학교는 오히려 문제교사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교권을 침해당한 제가 호소를 해도 전교조는 구경만 하구요. 처음에는 아이의 안전이 우선이라 어떤 비방과 음해를 해도 무시하고 뛰어다녔습니다.

안전한 쉼터에 아이를 맡기고 그래도 한 생명을 도와주었다는 사실로 위로를 삼고 견디었는데, 아동보호기관에서 상의도 없이 아이를 다시 성폭당한 지역으로 데려오더군요. 범인이 살고 있을 고향마을에도 한번씩 다녀간다 하구요.

처음에는 키울 능력이 없는 정신지체 엄마의 친권을 포기시키는 얘기를 하더니만 시간이 가길 기다렸나 봅니다. 법적으로 저는 제 3자구요, 정말 처음부터 그 아이를 입양하는 길 말고는 방법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참 괴롭더군요.

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열악한 환경에 처해 성범죄 대상이 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현 시스템으로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전무해서 점점 냉소적으로 되어 가고 얘기해봤자 헛된 메아리 같아서 홧병만 날려구 합니다.

제 경험으로 보면 이번 나영이 사건은 불행중 다행으로 증거가 남아 있어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기에 12년 형이라도 받은 것이구요, 범인을 잡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고 바다 속에 잠긴 거대한 빙산처럼 많은 성범죄 사건이 피해자만 울리고 없었던 일로 사라지는 여러 사례들을 보아 왔습니다.

어찌하든 잡아서 전자발찌라도 채울 수 있다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해야하는 범인검거 시스템입니다. 단지 법만 개정해서 형량만 높이는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구요 피해자가 마음을 놓고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간판만 내건 지원 단체가 없었다면 더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요)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수사(몇달동안 수사도 않더니 갑자기 강력팀이 맡아서 하더군요, 장애도 가진 초등여학생을요) 구조가 이루어져야 그나마 성범죄가 줄어들 겁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데 왜 우리는 늘 이렇게 말이 안 되고 기본 생존권마저 보장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 방송에서 지금 고치고 바로하지 않으면 부메랑이 되어 훨씬 무섭게 돌아 올 것이라 했는데 이번에 바로 하지 않으면 감당이 되지 않는 상태로 되돌아 올 겁니다.

10월 10일 시청에서 촛불 집회한다는데 서울로 올라가볼까 합니다. 그동안 지내온 것을 생각하면 두렵지만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다시 용기를 낼까 합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한차례 그 과정을 지나왔기에 할 말도 많고 문제점도 보입니다. 같이 한걸음 한걸음 격려하며 내디딜 많은 분들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정호재 기자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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