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완순]론스타 단죄 ‘국민정서법’ 이제는 그만

  • 입력 2009년 8월 21일 02시 58분


론스타와 관련해 최근 중요한 사법적 결정이 있었다. 대법원은 3년에 걸쳐 진행된 론스타와 과세 당국 사이의 강남금융센터(옛 스타타워) 인수 등록세 중과 소송에서 론스타의 손을 들어줬다. 론스타는 2001년 강남금융센터를 인수하면서 휴면법인을 활용했다. 설립 등기 후 5년이 경과해 취득한 부동산 등기에 대해서는 등록세가 중과되지 않는다는 조항에 의거해 론스타를 비롯한 많은 투자자는 휴면법인을 통해 등록세 중과를 면제 받았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일반화된 상식이었다.

몇 년 뒤 론스타가 강남금융센터의 양도로 막대한 이득을 실현할 것이라는 논란이 불거지자 과세 당국은 법적 해석을 뒤집었다. 등록세 중과 여부 판단을 휴면법인의 인수 시점으로 변경해 수백억 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론스타는 부당하다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얼마 전에는 외환은행 헐값, 불법 매각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기소됐던 당시 정부 및 기업 핵심 인사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03년 국가적 위기 상황에 처한 대한민국은 어렵게 외환은행 매각에 성공했으나 외국 사모펀드가 국부를 탈취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에 국민정서법으로 단죄하고 세법을 재해석해 론스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는 줄줄이 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법원으로부터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 받은 론스타의 죄가 지워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세청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의 혐의를 발표하고 범죄자인 양 낙인을 찍으면 최종적인 법적 판단과는 무관하게 해당 기업에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뚜렷이 남는다. 기업 이미지는 곤두박질치고 관련 인사가 실형을 살고 나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상처뿐인 영광이다.

외국인 투자에서 강성 노조도 문제고 외국인에게 불편한 생활환경도 걸림돌이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 점검할 점은 원칙과 법 집행에 있어서의 일관성이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자료를 봐도 외국인투자가들은 한국의 법 집행에서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형편없다고 지적한다. 그때그때 바뀌거나 해석이 달라지는 법보다는 차라리 유연성 없고 엄격한 법이 낫다는 얘기다. 적어도 예측과 대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관된 게임의 법칙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에 가서 경기를 치를 원정팀은 없다. 자국 선수의 볼에만 후한 스트라이크를 주는 야구 주심에게는 정확한 볼을 던지면 대응이 가능하지만 자국에 유리하게 게임의 룰을 계속 바꾸는 심판에게는 답이 없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일관성 없는 심판으로 국제사회에 낙인찍혀서야 되겠는가? 이로 인한 국가 브랜드 가치의 손상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글로벌 금융 허브의 꿈도 일찌감치 접는 것이 낫다.

외국인투자가에 대한 특혜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한국에서 돈을 벌어간다는 이유만으로 터무니없이 뭇매를 맞아서도 안 된다. 원칙과 룰은 일관성이 생명이다. 론스타는 추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록새록 곱씹을 반면교사이다. 세계 500대 기업과 중동 오일머니, 각국의 국부펀드까지 전 세계 투자가가 한국 중국 인도를 손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한다. 해외 투자가들에게 북한 문제나 정치 불안은 이미 시장에 반영된 변수다. 오히려 시장의 예측 가능성, 원칙과 법해석의 투명성과 일관성 같은 미묘한 요소가 최종 투자를 결정짓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헌법 위에 군림하는 국민정서법으로 단죄하고 국세청이나 공정위 등 관리 감독 기관의 낙인으로 멍드는 ‘제2의 론스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김완순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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