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미경]생활 속 그린이코노미

  • 입력 2009년 8월 20일 03시 03분


인터넷 쇼핑을 해본 사람은 안다. 물건이 배달돼 온 종이 박스를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접어놓아도 부피가 만만치 않다. 아파트 앞에는 주민들이 내놓은 빈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다.

얼마 전 이용했던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는 물건이 배송됐던 빈 박스에 고객이 재활용 옷가지를 넣어 다시 보내오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고객이 직접 박스를 보낼 필요는 없다. 전화를 하면 자선단체에서 박스를 가지러 온다. 힘들이지 않고 환경보호에 참가할 수 있다는 생각에 호응이 좋다고 한다.

요즘 환경보호를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냥 자신의 생활패턴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뿐이라고 여긴다. 쇼핑 갈 때 장바구니를 챙기고 합성세제 대신 재생비누를 쓴다.

환경을 돕는 것이 돈을 절약하는 길이라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이런 식의 환경보호를 ‘포켓북 환경주의’라고 한다. 실내 온도를 조절하고 절연재를 사용하는 것은 지갑을 두둑하게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중요해도 현대생활의 편리함을 포기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상생활의 리듬을 깰 정도로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면 환경을 지키려는 기특한 마음도 사라지기 십상이다. 인터넷으로 산 물건이 마음에 안 들어도 반품 절차가 귀찮아서 그냥 쓰는데 하물며 시간과 돈을 들여 택배를 부르거나 우체국에 들러 기부물품을 보내야 한다면 환경보호의 굳은 의지는 허물어지게 된다. 미국이 선진국 중 환경운동 실천율이 가장 낮은 데는 어디를 가든 자동차를 타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도시 구조가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지금 세계 각국은 ‘그린 이코노미’를 국가적 대사(大事)로 내세우고 있다. 환경문제에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한몸에 받아온 미국도 변하고 있다. 그동안 환경은 미국인들의 20대 주요 관심사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홀대를 받아왔다. ‘최초의 블랙 대통령이자 그린 대통령’으로 통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환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공포’ 대신 ‘비전’을 택했다.

환경운동은 전통적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 환경에 대한 인간의 무관심이 몰고 올 재앙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가뭄, 지진해일, 죽어가는 물고기, 기아 어린이는 익히 많이 봐온 이미지들이다.

공포 전략은 충격효과는 크지만 그동안 환경운동이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재앙을 경고하는 데 주력하다 보면 환경을 잘 지켰을 때 어떤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다. 걱정만 자아낼 뿐 기대가 결여된 환경운동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환경문제는 다른 사회적 이슈와는 달리 방해 요소가 주변에 널려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야기한다면 환경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냉소주의도 한몫한다. 이런 방해 요소들은 각기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다르게 작용한다. 오바마 정부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수준에 따라 5개 정도로 인구 클러스터를 나눠 각 클러스터에 맞는 메시지 내용과 전달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그린 열풍’이 불고 있다. ‘녹색성장’이 누구나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 국가 어젠다로 거듭나기 위한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정미경 교육복지부 차장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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