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김종휘]아이들은 놀아야 산다

  • 입력 2009년 8월 1일 02시 57분


“야, 방학이다!” 이건 옛날 청소년의 들뜬 소리다. “음, 방학이래….” 이건 요즘 청소년의 한숨 섞인 소리다. 방학을 해도 학교는 일제고사 학교 순위에 대비해 아이들을 등교시킨다. 선행학습 사교육 시장은 방학이니 아침부터 새벽까지 더 쌩쌩 돌린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생이나 중학교 1학년생이면 자판기 커피 중독이 시작된다. 놀기는커녕 잠잘 시간도 부족해서 아이들은 자판기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졸음을 쫓는다. 옛날처럼 청소년을 놀리는 방학이라면 아이들의 자판기 커피 중독을 좀 완화라도 시켜줄 텐데 말이다.

방학만큼은 제대로 놀게 하자

방학을 말하면서 국가의 오락가락 교육정책, 사교육 시장의 탐욕과 부모의 불안이 맞물려 빚어낸 ‘교육지옥도’를 펼쳐놓고 논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방학이라는데 우리 아이들이 평소보다는 잠 좀 실컷 자보고 어깨 좀 활짝 펴고는 “오늘은 뭐하지?” 하는 소리가 나오는 그런 하루를 만드는 편이 실속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방학을 맞아 청소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띄우려고 궁리하면 할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른들이 짜놓은 이 빈틈없는 경쟁의 그물망에서 아이들이 빠져나올 틈이 좀체 안 보이는데, 방학과 희망을 연결해서 뭘 말하자니 청소년이 듣고 비웃을까 봐 걱정된다.

하여 기억상실에 걸린 사람처럼 이 현실을 깨끗하게 까먹고서야 이런 소리를 할 수 있다. “아이들아, 방학 때라도, 반드시, 놀아야 산다!” 그렇다. 놀아야 산다. 학교든 학원이든 거짓말하고 땡땡이치는 아이라면 그래도 좀 놀 수 있다. 그럼 그 아이는 살 수 있다. 그래 놓고 부모나 선생이 야단을 치는데 대든다면 그 아이는 씩씩하게 살 수 있다. 그런 아이는 기가 살아 있다. 요즘 청소년은 기를 펴본 적이 없으니 기가 죽은 게 아니라 기를 체험해본 적이 없다. 하니 “놀아야 산다!”고 외쳐봐야 요즘 청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 놀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하루를 보낼 테고 심심하면 혼자 게임하거나 ‘문자질’을 할 테니까.

남은 방법은 하나다. 부모가 약간 정신이 나간 듯한 상태로 작정을 해야 한다. 내 아이를 이번 방학만큼은 그냥 놀리겠다는 작정. 이 작정이 망설여지면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고, 책 ‘중학생 홈리스’를 읽고 일시적 환각제를 복용한 듯 용기백배가 되면 좋겠다. 부모가 관여 안 하고 어른이 걱정 안 해도 아이들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그럭저럭 살아간다는 실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모가 내 아이를 놀리겠다고 작정하고 조금만 협력자가 되어 주면 우리 청소년은 이 방학 때 엄청 잘 놀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잘 놀아보면 그 체험이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씨앗으로 남아 스스로 기(생명력)를 샘솟게 하는 기적이 생겨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는다.

땀나게 몸 쓰고 자연과 접촉을

부모가 택하면 제일 좋은 태도는 내 아이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알아서 놀라고.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부모가 많지 않아 보이니 굳이 방법을 하나 찾자면 이런 걸 권하고 싶다. 1. 땀나게 몸 쓰는 것 2. 자연과의 접촉이 많은 것 3. 부모가 동행하는 것. 이 세 가지를 고루 충족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골라서 그렇게 놀자고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내가 해보고 효능을 본 방법 하나를 권하면 3일 이상 바닷길이나 숲 속 길(등산 아니고)을 그냥 걷는 일이다. 이걸 해보면 첫날엔 아마 아이의 불평이 하늘을 찌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틀이 되고 사나흘이 되면 효능이 나타난다. 효능이란 이렇다. 걸으면 땀이 나고 몸이 깨어난다. 바다나 산을 접촉하니 마음이 느긋해진다. 부모와 아이가 동행하니 대화가 없어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의 등(뒷모습)을 보게 된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면 독자들이 감을 잡으시리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부모와 아이는 이제껏 머리 쓰는 일만 죽어라 해서 몸이 움츠러들고 겹겹의 도시문명 속에서 바쁘게 지내느라 마음이 급해지고 서로 앞모습만 보고 살아서 불만이 가득한 관계만 겪었기에 반대로 해보라는 것이다. 그럼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기가 기적처럼 살아나서 생명력이 꿈틀댄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노트에 적었던 걸 옮겨 보겠다. 생명력(vitality)=창의성(creati-vity)+자기복원활동(recovering). 여기에서 창의성은 물론이고 특히 자기복원활동은 현재진행형으로 놀고 있는 동안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앞서 권한 걷기를 해볼 요량이면 부모가 결심할 일이 있다. 시간을 내야 한다. 3일 이상 만사 제치고 시간을 내야 한다. 이 시간을 도저히 못 낸다면 가끔 TV에 소개되는 해병대 가족체험 같은 1박 2일 프로그램에 가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박박 기고 ‘뺑뺑이’를 체험한 다음 서로 붙잡고 콧물 눈물 땀 쏟아내며 엉엉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놀라고 해도 놀 줄 모르는 이 시대의 아이들과 부모가 방학 때 해봄 직한 (내 아이 기를 살리고 생명력을 움직이게 하는) 놀이의 풍경이 이런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종휘 하자센터 부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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