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대통령은 ‘표현의 자유’ 없다

  • 입력 2009년 7월 19일 19시 58분


남의 떡이 커 보인다더니 남의 나라 대통령이어서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말은 멀리서 들어도 감동적이다. 지난주 그는 흑인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인 NAACP(유색인종 지위 향상을 위한 협회)에 가서 “흑인지위 향상에 힘쓰겠다” 같은 입에 발린 소리만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말해야 합니다. 흑인이라는 사실이 공부 못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요. 아무도 네 운명을 대신 써 줄 수 없다고도 말해 주십시오.”

말 잘하는 대통령으로 이름난 오바마지만 즉석에서 한 말이 아니다. 긴 연설이든 짧은 연설이든 그는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되고 정제돼 원고로 만들어진 프롬프터를 보고 읽는다. 원더브라로 가슴을 부풀린 여자를 놀리듯 ‘프롬프터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다.

원고대로만 말한다고 해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진정성이 없다고 할 순 없다. 오히려 내겐 말 한마디도 무겁게 아는 지도자로 보인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아이디어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모든 것을 고려한 끝에 선정된 정책을 가장 적확한 말로 표현해 국민을 설득하는 게 일이다. 그래서 링컨은 연설 직전까지 끊임없이 문장을 다듬었고 처칠은 암기할 만큼 연습했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 한 말이라도 최고지도자의 한마디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지닌 메시지로 전파되기 때문이다.

무심한 말이 잘못된 메시지로

이달 초 원주정보공고를 찾은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 현실이 누구나 대학을 가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 이러니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수 기술 인력을 키우는 마이스터 고교에 왔으니 “모든 사람이 대학 가는 것보다 마이스터 고교에 들어가길 원하는 시대가 몇 년 안에 온다”며 학생들을 격려하는 말도 필요했을 터다.

그러나 국민에게 전달될 메시지를 고려한다면 가볍게 해선 안 될 말이었다. 이 대통령은 상고를 나왔지만 ‘누구나 대학을 가려 했던’ 사람 중 하나다. 아들딸 누구도 상고나 공고에 보내지 않았다. 자녀의 좋은 학교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을 한 일도 있다. 자칫 “나와 내 자식은 성공해야 되니까 대학 가야 하지만 너도나도 대학만 가려 들어 대졸 취업률만 떨어진다”는 소리처럼 들릴 우려도 있다.

오바마는 “난 흑인아이들이 르브론 제임스(농구선수)나 릴 웨인(래퍼)처럼 되기만 바라는 걸 원치 않는다”며 “과학자 엔지니어 의사 교사 대법관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길 원한다”고 했다. 교육이 불평등에 맞서는 가장 강한 무기이자 기회를 찾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환경에 얽매이지 말되 자기책임의식을 갖고 큰 꿈을 품어라, 정부는 교육개혁으로 아직도 차별받는 흑인들의 꿈까지 이루게 하겠다는 메시지다.

마이스터 고교 지정 등 학교 다양화를 통해 진로 선택의 폭을 넓히고 유능한 산업인력을 양성하는 이 정부의 정책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학 진학의 열망을 지닌 모두에게 잘못됐다는 메시지를 주는 건 교육개혁의 의지를 의심케 한다. 선진국은 지식경제 산업에 집중하고, 고숙련 아닌 단순직이 후진국으로 옮겨가는 추세는 글로벌 위기에도 쉽게 뒤집히지 않았다. 미국에선 2년제 이상 대졸자의 전문직종이 고졸자 일자리의 2배 빠른 속도로 는다. 덴마크는 1990년대 경제위기 때 저숙련 저임금 노동을 다른 나라에 보내고 자국민은 지식경제근로자로 변신시킨다는 정책을 세웠다.

‘2025년까지 고졸자 80%를 대학에 진학시키자’는 미국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목표를 우리는 진작 달성해버린 엄청난 잠재력의 나라다. 지금 우리 정부가 할 일은 대학과 산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여 실력 있는 대졸자 모두가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강소국을 만드는 것이지, 아무나 대학 간다고 나무랄 게 아니다. 대졸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든, 평등사회를 위해서든 좀 더 나아지려는 사람을 주저앉히려 든다면 과거 노무현 정부와 다를 게 없다.

서민 행보가 포퓰리즘 될라

‘부자 정부’로 출범한 원죄를 속죄하듯 이 대통령은 “내가 대통령이 된 건 서민의 아픔을 돌보라는 소명이 주어진 것”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했다. 누구나, 모든 것을 놓고 경쟁하는 세계화에서 승자와 패자는 나오게 마련이다. 경제위기 이후 좌파정부도 우파정부도 경쟁적으로 패자를 더 보듬는 정책을 편다. 그러나 뒤처진 이들에게 세계무대로 복귀할 발판을 마련해 주는 대신 앞선 이들 발목만 잡았다간 모두가 뒤진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반대에 부닥치면 겁먹고 금방 물러섰던 정부가 말만 앞세운다면 더 절망적이다.

“한마디를 하려고 할 때마다 이 말이 백성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 고려하기 때문에 감히 많은 말을 할 수 없다”던 당 태종의 말은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제하는 것도 대통령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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