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너도 나도 개헌론

  • 입력 2009년 7월 13일 20시 47분


김형오 국회의장은 요즘 ‘개헌 전도사’로 불릴 만큼 열성적으로 개헌을 역설한다. 국회에서 서둘러 공식 논의에 착수하고 늦어도 내년 상반기 지방선거 전까지 개헌을 마무리하자고 17일 제헌절 기념사를 통해 제안할 계획이다.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 헌법은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 식의 극한대결 폐해가 크므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현역 국회의원 186명이 가입한 ‘미래한국헌법연구회’도 9, 10일 이틀간 개헌토론회를 열고 여야 의원들의 개헌론을 띄웠다.

하지만 개헌이 순탄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87년 현행 헌법으로의 개정에는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과 야권 지도자 YS(김영삼) DJ(김대중)가 있었다. 1948년 제헌 이후 지금까지 9차례의 개헌이 있었지만 4·19와 6월 민주항쟁처럼 구체제를 종식시키려는 헌법제정권력(국민)의 의지가 하나로 모이거나, 권력자가 정권 연장을 위해 ‘다걸기(올인)’했을 때만 가능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과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대처하는 일만으로도 벅차다. 개헌을 밀어붙여 정치적 논쟁의 한가운데 서서 자칫 레임덕을 앞당길 이유가 없다. 차기 대권경쟁의 선두에 서 있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굳이 권력구조를 바꿔 새로운 변수가 야기되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야권에 개헌 논의를 끌고나갈 만한 리더십을 갖춘 개헌주체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개헌 내용의 문제도 간단치 않다. 현재 개헌논의에 깊이 참여하고 있는 일부 전문가조차 “솔직히 지금 헌법이 잘못돼서 정치가 이 모양이냐”고 반문한다. 어떤 개헌론자들은 “5년 단임제는 무책임 대통령제”라며 4년 국정운영 성적을 표로 평가받아 잘했으면 한 번 더하고 못했으면 그만두는 4년 중임제가 답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4년 중임제가 되면 임기 첫날부터 다음 선거를 의식해 국정이 왜곡되고 레임덕이 더 빨리 올 수도 있다는 반론이 공존한다. 미국식 4년 중임제에 대해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대통령 때 국무장관을 지낸 사이러스 밴스는 “임기 초 8, 9개월은 국정 익히느라 바쁘고, 마지막 1년∼1년 반은 재선(再選) 준비하느라 지나간다. 일할 수 있는 진짜 임기는 1년 반뿐”이라고 비판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이유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정답이라고 역설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원집정부제(二元執政府制) 나라인 프랑스에선 그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취임 이후엔 총리의 모습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개헌 논의에 도사린 또 하나의 복병은 권력구조 문제만 뚝딱 해치울 수 없다는 점이다.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는 순간 영토조항(3조)과 통일방안(4조) 등 국가정체성 관련 조항은 물론이고 경제 환경 평등 저항권 등 가치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깊어진 이념 갈등이 일거에 분출할 우려도 많다.

현행 헌법은 22년간의 환경 변화를 반영해 발전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하지만 헌법은 ‘노래 18번’을 바꾸듯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국민적 합의를 모으지 못한 채 단기간에 성과를 내겠다는 정치인들의 욕심이 앞서면 자칫 나라 전체를 논쟁의 수렁에 빠뜨려 국력만 탕진하고 개헌 자체는 실패로 끝날지도 모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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