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주당은 ‘權言독재’를 말할 자격 없다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언론과 관련해 최초의 행보를 한 것은 당선자 시절이던 2003년 1월 9일 한겨레신문을 방문한 일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최학래 당시 사장과 나중에 KBS 사장이 된 정연주 논설주간을 만나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2003년 3월 4일에는 KBS 창사 30주년 리셉션에 참석해 “방송이 없었으면 내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생각도 해봤다”며 “방송이 가자는 대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KBS 사장에 자신의 언론고문이었던 서동구 씨를 임명했다가 취임 9일 만에 중도 하차하자 노골적인 자기편이었던 정연주 씨를 임명했다. 이후 KBS는 ‘인물 현대사’ ‘한국 사회를 말한다’ 등 이념 편향적인 프로그램과 친노(親盧) 프로그램을 양산했다.

2004년 3월 국회가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하자 KBS와 MBC는 공영방송의 객관성을 내팽개치고 탄핵 반대의견만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한국언론학회는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편파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방송은 노 정부를 밀어주고 정부는 방송에 구애하는 밀월 관계는 정권 내내 계속됐다. 정부는 방송의 광고 수입을 늘려 주기 위해 2005년 낮방송을 허용했다.

탄핵 파문 이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자 노 정권은 신문법과 언론중재법을 ‘개혁 입법’이라며 밀어붙였다. 비판적 주류신문들의 목을 조르기 위한 표적 입법이었다. 신문법 등은 2006년 헌법재판소로부터 5개 조항에 걸쳐 위헌 및 헌법 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노 정부는 한편으로 국민 세금을 쓰는 신문유통원과 신문발전위원회 설치조항을 신문법에 포함시켰다. 주로 친노 군소신문들을 위한 기구로, 이 역시 권언유착을 꾀한 것이었다. 노 정부의 반민주적 언론정책은 2007년 정부 부처 내 기자실에 ‘대못’을 박는 이른바 ‘취재 지원시스템 선진화 방안’으로 이어졌다. 기자실 대못질 이후 2007년 10월 15일 교육부가 서울 외교통상부 건물의 통합 브리핑룸에서 브리핑을 했을 때 참석한 기자는 관영매체인 한국정책방송(KTV)과 한겨레 기자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과의 건전한 긴장 관계’를 자주 입에 올렸지만 ‘긴장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메이저 신문만을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나머지 방송과 군소신문, 인터넷 매체와는 과거 정권보다 더 심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민주당의 전병헌 의원이 어제 “천지사방에서 군사독재보다 무서운 권언(權言)유착, 권언독재의 조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권력과 언론이 유착됐으며 ‘권언독재’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언론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다.

요즘의 방송처럼 ‘대통령 때리기’가 심한 시대가 언제 있었는가. 18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죽으면 떡을 돌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는 말이 서슴없이 방송됐다. 과거 어느 정권에서도 보지 못했던 일이다. 이런 방송이 여과 장치 없이 생방송으로 흘러나오는 나라에서 ‘권언유착’에 ‘권언독재’까지 들먹이는 건 난센스이다. 더구나 ‘노무현 계승당’이 권언유착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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