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현지]‘리베이트 근절 선언’에 발 뺀 의사협회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리베이트 근절 선언’을 하자는 정부와 제약업계의 제안을 의사단체와 병원계가 거부했다. ‘주는 쪽(제약업계)’은 “주고받지 말자”고 하는데 ‘받는 쪽(의사·병의원)’이 거부한 모양새다. 리베이트 근절이란 게 선언으로 될 일도 아니지만, 그나마 마련한 선언조차 반쪽짜리 다짐이 되고 말 것 같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11일 그랜드하얏트 서울 호텔에서 열리는 ‘의약품 윤리경영 정착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협회는 5월 초 불참 의사를 공식 전달했다. 병원협회는 공식적으로 의사를 밝히지 않았지만 참석이 어렵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외국제약사 단체인 다국적의약산업협회, 한국제약사 단체인 한국제약협회, 그리고 약품 도매상과 약사들이 참석한다. 단순한 세미나가 아니라 각 단체장이 ‘공정거래관행 확립을 위한 서약서’에 서명하는 행사다.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도 공정거래 정착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차원에서 참석할 예정이다. 의료인도 나온다면 리베이트를 둘러싼 모든 이해관계자가 모이는 행사가 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마지막까지 의협과 병협의 참석을 요구했으나 최종 불참을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의협에 불참 이유를 물어봤다. 좌훈정 의협 대변인은 “횡단보도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없어서 무단횡단을 한다면 무단횡단을 욕할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옮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리베이트는 잘못된 약가(藥價) 정책의 부산물이니 약가 정책을 바꿔야지 리베이트를 주고받지 말자고 서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의협의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선언은 할 수 없다고 말한 의협이 솔직한 것인지도 모른다. 군 복무 대신 보건소에 파견된 젊은 공중보건의도 리베이트를 받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의사와 제약업체의 부도덕성에만 초점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도 의협의 불참 통보 논리는 수긍하기 힘들다. 설사 횡단보도(약가 정책)가 잘못됐다고 치더라도 그렇다. 그간 드러난 리베이트 거래 실상을 돌아보면 의사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횡단보도가 잘못 설치돼 어쩔 수 없이 무단횡단(리베이트 수수)을 하는 경우가 아니었다. 횡단보도 운운하는 건 국민의 눈을 가리기 위한 얄팍한 언변(言辯)에 지나지 않는다. 받겠다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 한 주려는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의약품 윤리경영 선언식이 열리는 그 시간에도 리베이트는 오갈 것이다.

김현지 교육생활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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