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승철]신종플루 경계 늦추지 말아야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신종 인플루엔자A(H1N1) 뉴스가 어느새 뒤로 밀려났다. 전직 대통령 사망과 북한의 핵실험에 가렸고 생각보다 사망자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독감 정도로 여기고 슬쩍 지나가리라고 보는 모양이다. 신종 인플루엔자로 지난달 13일 첫 사망자가 나오고 한 달 반이 지나기까지 세계적으로는 50여 개 국가에 유행하면서 1만3000명이 넘는 확진환자 중 100여 명이 사망했다. 한국에서는 32명이 발생했지만 사망자는 없다. 특별한 병이 아니며 한국인은 김치와 마늘을 먹어서 안 걸린다는 소문마저 파다하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하지 않고 인명피해도 적으며 한국 사람에게는 김치가 무서워서 옆으로 피해갈까? 잘 모르는 소리다.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이제 겨우 중반전이 진행되는 중이다. 앞으로 한 달 이상 더 유행하고 인명피해는 물론 경제적 사회적 피해가 있을 것이다. 실상을 잘 들여다보면 신종 인플루엔자는 만만찮게 이름값을 하고 있다.

우선 신종 인플루엔자 진단법이 과거와 달라서 유행 규모와 치사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신종 인플루엔자 유행의 시발지인 멕시코에서 초기에 보고될 때는 1500여 명 발생에 사망자가 60여 명이었다. 전 세계가 크게 긴장해서 불안에 떨었다. 이 수치는 1918년 스페인독감이나 1968년 홍콩독감 대유행 시 환자 발생 규모나 사망자 계산법과 맥을 같이한다. 즉, 고열이 나는 감기 몸살을 앓는 사람과 폐렴 증세로 사망한 사람의 단순집계다. 정밀한 바이러스 검사 결과에 따르면 환자 1500명 중 60여 명과 사망자 50여 명 중 7명만이 진성 신종 인플루엔자에 의해 생겼다. 스페인독감이나 홍콩독감도 정밀검사를 하면 환자나 사망자 수가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 수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가 적고 사망자가 없는 이유는 신고 위주의 방역과 정밀한 진단검사법으로 진성 환자를 정확히 가려내기 때문이다. 독감환자가 스스로 찾아와 신고하거나 외국어학원의 경우와 같이 외국 유행지에서 와 여러 명이 집단 발생하는 사례처럼 눈에 띄는 경우에 검사를 하므로 환자 수가 적다. 사망자가 없는 이유는 한국의 의료계 관습과 관계가 있다. 노인이나 병약자가 독감, 몸살을 앓다가 폐렴으로 사망하면 노환이나 숙환으로 계산이 되지 사망의 1차적 원인인 독감으로 진단서가 나가는 법이 없다.

독성이 강하지 않아 보통 독감 수준이라고 가볍게 넘어가도 되는 문제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보통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한 해에 3만5000명이라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보통독감 유행 시 발병률이 국민의 10% 수준이라 치사율은 낮지만 가려져 있을 뿐 인명피해는 적지 않다. 이번 인플루엔자는 신종이므로 인류가 면역력이 없고 다행히 독성이 약하다고는 하나 보통독감 수준보다 약하지는 않으므로 환자 수가 늘어나는 만큼 인명피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국민이 할 일은 따로 있다. 개인적으로 제 몸은 제가 지켜야 한다. 특히 신종 인플루엔자는 고령자나 병약자를 노리므로 손을 잘 씻고 과로를 피하며 폐렴예방주사를 맞아 만일을 대비해야 한다. 정부는 환자 유입이나 발생을 막는 예방적 방역에서 환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치료하는 대응적 방역에 힘써야 될 때다. 전염병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한다. 정부는 국제 협력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 등 신종 전염병 진원지와의 협력 시스템이 중요하다. 전염병의 정체를 미리 파악하면 예방과 치료대책이 나온다.

박승철 삼성의료원 건강의학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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