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오프]작년 7월 허재감독이 히딩크를 찾은 이유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2002년 한일 월드컵 직후 축구계는 물론 경제계까지 거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을 배우려는 열풍에 휩싸였다. 월드컵 본선 16강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한 한국을 4강까지 끌어올린 히딩크 감독은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벤치마킹 대상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에 대한 전략과 전술, 트레이닝 방법론에 능했다.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당시 대표팀 코치였던 박항서 전남 드래곤즈 감독은 “선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까지 알 정도였다”고 말했다.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한국을 떠나 호주와 러시아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심리 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도 요즘 스포츠 심리학에 빠져 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7월 히딩크 재단의 시각장애인 축구장 건립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을 때 프로농구 KCC 허재 감독을 만났다. 당시 월드컵 4강 코칭스태프끼리 모인 자리에 허 감독이 나타난 것이다. 2005년 5월 KCC 사령탑을 맡은 허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고민하다 ‘4강 제조기’ 히딩크 감독이 온다는 소식에 실례를 무릅쓰고 한 수 지도를 받으러 왔다. 허 감독은 “그 자리에서 히딩크 감독이 여러 얘기를 해줬는데 ‘선수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감독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것을 가장 강조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즉시 변했다.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허 감독은 눈높이를 낮춰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서장훈(전자랜드)의 트레이드 파동 속에 한 달 가까이 혈변을 보는 고통을 맛봤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선수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부상 선수가 쏟아졌지만 후보들에게도 믿음과 기회를 주며 공백을 매웠다. 감독으로서도 정상에 오른 배경에는 허 감독의 ‘히딩크 배우기’가 있었던 셈이다.

보통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자기가 최고인 줄 안다. 그래서 지도자로서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허 감독이 보여준 ‘히딩크 따라잡기’는 스타 출신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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