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태호]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거는 기대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내달 초 제주도에서는 한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간의 특별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한-아세안의 대화관계 수립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열리는 정상회의지만 국내외의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선 이번 회의가 기존의 아세안+3(한국 중국 일본) 형식에서 벗어나 한국의 초청으로 처음 열린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한 바 있는 ‘신아시아 구상’ 때문에도 이번 회의에 국제적 이목이 쏠리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이번 회의가 동아시아에서의 주도권 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이렇듯 이번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그러나 이번 회의의 핵심은 양자 간 협력 증진에 있다고 봐야 한다. 지난해 한-아세안 무역규모는 900억 달러를 넘어 한미 간 무역규모를 추월했으며 이제 아세안은 중국 유럽연합(EU)에 이어 우리의 3대 교역대상지로 부상했다. 또 지난해 우리 기업은 중국보다 아세안 지역에 더 많이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세안은 석유, 천연가스 등 주요 자원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경제협력파트너라 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은 일본 미국 EU 중국에 이어 아세안의 5대 무역상대국이며 투자 측면에서는 EU 일본 미국에 이어 4대 투자국이다. 이렇듯 한-아세안 경제교류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아세안은 이미 상품 및 서비스 분야에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이번 제주 정상회의에서 양자 간 투자협정을 체결할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한-아세안 경제 교류는 더욱 빠른 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세안 경제는 그동안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그 결과 아세안은 많은 일본 기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하게 됐으며 산업고도화와 균형경제발전에 한계를 보여 왔다. 최근 일본경제가 활력을 잃으면서 아세안은 대외경제관계의 다변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중이며 그중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특히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등 상대적으로 경제발전이 늦은 국가는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을 전수받기를 강렬히 원한다. 이미 한국은 다양한 공적개발원조(ODA) 프로그램을 이행하고 있으며 규모도 앞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이들 국가에 한국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체적인 경협지원 방안을 협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과 아세안 국가는 양자 간 경제협력 외에도 여러 분야에서 공동 노력을 펼칠 수 있다. 특히 한국과 아세안이 중견국가그룹으로 연대해 공동의 입장을 구축한다면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세안+3체제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에너지 기후변화 녹색성장 등 중요한 의제에 대해 한국과 아세안이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면 문제해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한-아세안 협력은 최근 대두된 동아시아경제통합 논의에 있어서도 중국 일본 등 경제대국의 주도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를 통해 합의한 다자화 기금 1200억 달러의 배분 결과(중국과 일본이 각각 32%, 아세안이 20%, 그리고 나머지 16%는 한국이 부담)를 보면 한-아세안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명백해진다. 즉, 중국과 일본의 견해가 서로 다를 경우 아세안과 한국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 만큼 한-아세안의 공조가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 한국과 아세안은 다자 간 이슈에 대해서도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국제적 정책공조는 물론이고 세계무역기구(WTO)가 주관하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에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특히 DDA 협상과 관련해서는 개발도상국을 설득해 무역자유화 협상을 진전시키고 동시에 선진국을 설득해 개도국의 관심사인 개발 관련 의제에 기여하게 하는 데 한국과 아세안의 역할이 결정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지역의 문제는 물론이고 글로벌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도 주도권 경쟁이나 특정 국가의 견해만을 주장하기보다는 의견을 같이하는 중견국가가 연합해 건설적이고 실용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방안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아시아 구상’도 앞으로 이런 중견국가의 긍정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데 근간을 두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 한-아세안 정상회의가 중견국가의 중요성을 함께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아세안의 협력관계가 한 차원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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