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훈]‘감기보다 못한 병’에 쓰러진 멕시코 공공의료

  • 입력 2009년 5월 7일 04시 24분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국내 첫 환자인 51세 수녀는 “감기보다 못했다”고 말했다. 멕시코에서는 수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멀쩡한 이유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똑같은 바이러스인데 왜 파괴력이 다르냐는 것이다.

레안드로 아레냐노 주한 멕시코대사의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그는 “멕시코에서 초기 감염자들이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이 문제를 키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멕시코의 공공의료 시스템이 취약해 신종 인플루엔자 사태가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200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헬스데이터에 따르면 멕시코는 공무원, 공공 부문 종사자 등 전체 인구의 48.3%만이 공공의료 혜택을 받고 있다. 민영보험에 가입한 소득 기준 상위 인구 3%를 포함해 인구의 절반만이 수혜자다. 물론 멕시코에도 우리의 보건소와 비슷한 저소득층 공공의료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저소득층도 진료비의 52.4%를 내야 하며 상당수 시설은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멕시코는 OECD 회원국 가운데 의료 불평등이 가장 심하고 서비스 접근성도 떨어지는 국가로 분류돼 있다.

박승철 국가신종인플루엔자대책위원회 위원장(삼성서울병원 교수)은 “전염병은 기본적으로 ‘빈민병’”이라고 말했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전염병이 생기고 파괴력도 커진다. 멕시코 국민이 공공의료 혜택을 더 받을 수 있었더라면 파장은 훨씬 작았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국내에서 기세가 많이 꺾였지만 앞으로도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나 2차 감염자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멕시코와 같은 사태를 예상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전체 인구의 97%가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다. 나머지 3%는 정부가 의료비를 대고 있다. 1인당 평균 본인부담금도 36.9%로 멕시코보다 상당히 낮은 편이다.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진료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당연지정제’는 국내 공공의료시스템의 기본 골격이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와 일부 경제계가 이 시스템을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의료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고 산업화 속도를 올리기 위해서다.

미래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의료산업화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공공의료시스템을 내주고 산업화를 취하는 식이 돼선 안 된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당연지정제 폐지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전염병 국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김상훈 교육생활부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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