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노조에 인사권 내준 공기업 단체협약 뜯어고쳐야

  • 입력 2009년 5월 7일 02시 56분


공기업이 ‘신(神)도 부러워하는 직장’이 된 것은 노조가 ‘낙하산 사장’을 쥐고 흔들어 단체협약에 인사권 개입 조항을 집어넣고 과도하게 복지를 확충한 결과다. 최근 처음으로 공개된 단체협약 내용은 노조가 경영진에 준하는 권한을 누려가며 ‘노조 왕국’을 건설했음을 보여준다.

경영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권을 일부 장악한 노조도 많다. 토지공사와 조폐공사는 특정직급 이상 채용 시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한국공항공사는 구조조정 합병 분할 조직개편을 노사 합의로 하게 돼 있어 사실상 노조의 결재를 받는 셈이다. 철도시설공단은 노조의 정원 확대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할 수 없다. 노조원인 직원의 채용 이동 평가 승진 같은 인사원칙을 사전에 조합과 협의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합의하는 공공기관이 태반이다.

인사권을 노조가 장악하고 있으니 공공기관에선 노조를 끼고 돌아야 인사에서 유리하다. 한국전력 인천공항공사에선 노조간부 인사나 징계 시 사전에 노조와 합의해야 한다. 도로공사는 노조 전임자에겐 최고 등급의 근무평가 점수를 준다. 공항공사에서는 노조가 반(反)조합적 비노조원을 징계에 회부할 수 있다. 철도공사와 산업연구원은 근로시간을 줄여놓아 연장 및 야근 수당을 더 많이 챙길 수 있게 해놓았다. 전체 공공기관의 노조 조직률이 65.8%로 전체 기업 평균 10.8%의 6배 수준인 것은 노조가 누리는 이런 특권 때문이다.

정부는 300여 공공기관을 감독하면서 대형사업이나 챙기고 그동안 단협 내용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노조는 이 틈을 파고들어 낙하산 기관장의 취임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슬그머니 양보하는 시늉을 하며 복지와 경영권을 따냈다. 기관장은 자리를 보전하고 임기를 채우기 위해 단협이나 이면합의를 통해 노조에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선물을 잔뜩 안겨줬다.

정부가 이번에 인터넷 사이트 ‘알리오(alio.go.kr)’에 공기업 단협 자료를 공개하면서 이 같은 실태가 드러났다. 노조 왕국의 단협은 노사 합의라는 합법적인 형태를 가장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상위 법규에 위반되므로 조속히 시정돼야 한다. 정부는 단순히 방만한 단협 내용을 공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공공기관장들에게 역대 낙하산 기관장의 적폐(積弊)를 없앨 시간표를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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