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구섭]전사자 유해발굴 가속도를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최근 포항에서 해병대 6·25 전사자 유해 일흔아홉 구가 발굴됐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얼마나 다행인가. 해병대 자체로는 처음으로 참여한 이번 발굴에 대해 해병대 관계자는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선배 해병들의 유해를 한 구도 남기지 않고 찾아내 그분들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아 드리겠다는 각오로 발굴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또한 “포항지역뿐만 아니라 김포와 강화지역에서도 발굴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다.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란 구호로 유명한 미국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JPAC·Joint Prisoners of war, Missing in Action Accounting Command)는 전쟁 포로나 실종자의 시신을 전문적으로 찾기 위해 창설된 부대다. 이 부대는 천문학적 예산을 써가며 미군이 전쟁을 치렀던 세계 각국에 배치되어 전문적인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1973년 창설 후 지금까지 1400여 명의 전사자를 찾아내 시신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미국의 힘은 자발적 애국심에 있고, 전쟁포로·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는 바로 자발적 애국심의 발전소다. 이 부대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생겨난 ‘조국이 절대로 자신을 잊지 않을 것’이라는 군인들의 믿음, 국민들이 느끼는 가슴 뭉클함이야말로 그 어떤 글이나 말로 대신할 수 없는 살아 있는 교육이다.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애국심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존재할까?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영혼이 분리될까? 영혼은 육신에 서려 있을까? 이런 물음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종교관이나 내세관에 따라 믿음과 그 정도가 다르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의 시신을 잘 수습하고 장례를 성대히 치르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전 인류의 공통적인 특성이다. 더욱이 나라를 위해 집을 떠나 전장에서 싸우다 숨진 군인이 있어 그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했다면 유족들이 느끼는 비통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너무 커 이루 형언하긴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유해 발굴 전문부대를 창설해 6·25 전사자의 유해를 전문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유해 발굴 작업에는 해당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일반부대 장병들이 참여하고 있다. 유해 발굴에 참여했던 장병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숭고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힘들어도 힘든 줄을 몰랐다. 선배 전우들이 목숨을 바쳐 지킨 조국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올바른 군인정신이요, 스스로 느끼는 애국심의 발현이다.

그러나 아직도 6·25 당시 전사자의 80%가 전투현장에 그대로 버려진 상황에서 지금의 인력과 발굴 속도는 크게 부족하고 더디다. 앞으로 몇십 년이 흐르면 땅속의 시신이 완전히 훼손돼 더는 발굴할 수 없을 것이고, 많은 유족들도 세상을 뜰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장병들에게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장비, 그리고 인력을 지금보다 훨씬 더 늘려야 한다. 아울러 전사자 신원 확인에 필요한 유가족 소재 파악과 유전자 검사용 시료 채취에 더 많은 홍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북한지역 유해 발굴을 위해서도 정치권 차원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

“강국(强國)이 전사자 유해를 소중히 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를 가장 잘 모시는 나라가 강국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한 달 앞두고 우리 국민 모두가 가슴에 새길 말이다. 서해 기름 유출 사고 때 그 많은 기름을 걸레로 다 닦아낸 우리 국민이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을 위한 자원봉사자를 모집한다면 나부터 기꺼이 삽을 들고 달려갈 것이다.

김구섭 국방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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