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동호]북한 미사일의 경제적 이해

  • 입력 2009년 4월 10일 02시 55분


개인이든 국가든 돈은 필요하다. 집안 살림을 하려 해도 돈이 있어야 하고 사업을 하려고 해도 밑천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나라의 운영에도 돈이 필요하다. 경제 성장이야 말할 나위 없다.6·25전쟁 이후 북한 역시 바로 이 문제에 직면했다. 전쟁 피해의 복구와 성장 토대의 마련을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절실히 필요했다. 더욱이 빠른 복구와 생활수준 향상은 분단된 한반도에서 체제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입증하는 문제와도 결부돼 있었다. ‘실업 없는 천국’은 그래서 나왔다. 완전고용은 사회주의의 이상이기도 했지만 성장을 위해 경제 내 노동력을 최대한 동원하려는 전략이기도 했던 것이다.

문제는 돈이었다. 내부자본은 크게 부족했고, 그렇다고 차관을 도입하거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경제수준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원조에 의존했다. 1950년대 북한이 받은 원조는 국민총생산의 20% 정도로 막대한 규모였고 고도성장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원조는 성격상 장기간 지속될 수 없었다. 실제로 1950년대 후반 원조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1960년대 북한은 새로운 자본동원 방식이 필요했다. 작은 내수시장과 과잉노동력을 감안하면 외부로 눈을 돌리는 방식이어야 했다. 북한은 오히려 주체의 기치 아래 자립경제를 선택했다. 실패는 당연했다. 아직 내부자본의 축적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체’는 정치적 슬로건으로는 그럴듯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모한 것이었다. 자본도 자원도 부족한 데다 가진 것이라곤 노동력뿐인 작은 경제가 홀로 서기를 하겠다는 방향은 애초부터 잘못됐다. ‘주체’를 내건 이상 대외 의존적으로 비칠 수출이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추진할 수는 없었다.

‘주체’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

마침내 ‘주체’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북한은 느꼈다. 그러나 내부엔 여전히 돈이 없었다. 할 수 없이 1970년대 북한은 차관이라는 외부자본 동원 방식을 선택했다. 외부자본 중에서 체제 유지에 가장 안전한 방식이었다. 동서 데탕트 분위기에 따라 서방세계로부터도 12억 달러를 빌렸다. 그러나 오일쇼크로 세계적 경제침체가 발생한 데다 차관을 경제성 없는 중화학공업에 투자한 바람에 북한은 이자조차 갚지 못하게 됐다. 차관으로 외부자본을 동원하려던 북한의 시도는 실패로 귀결됐고 지금까지도 북한은 신용불량국가로 남아 있다.

내부자본은 없고 원조와 차관도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남은 방식은 수출과 FDI뿐이었다. 열악한 투자환경과 높은 정치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FDI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방식이었다. 남한처럼 진작 ‘수출입국’의 길로 나서야 했다. 그러나 수출은 ‘주체’와도 어긋날 뿐 아니라 경제 개방과 연결되므로 어떤 경우에도 장려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북한은 1980년대 합영법, 1990년대 나진·선봉특구로 이어지는 FDI 방식을 택했고, 실패는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투자할 요량으로 북한을 방문했다가도 실상을 보고나면 오히려 투자 의사가 사라지는 경제였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은 소련 붕괴나 홍수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잘못된 자본동원 방식과 그에 따른 경제의 몰락 때문인 것이다.

가능한 모든 방식은 수포로 돌아갔고 수출은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은 것은 핵과 미사일 개발일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 수 없게 되었거나 쉽게 돈 벌려는 사람이 자해 공갈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자기 몸을 망치듯 주민의 후생과 경제의 성장 기회를 훼손하면서 주변국을 협박하는 방식이다. 돈을 달라는 협박이고 지속되는 경제난으로 비틀거리는 체제를 보장하라는 협박이다.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일각에선 돈도 없으면서 무기를 개발하느냐고 하지만 북한의 처지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점점 흉흉해지는 내부 민심을 달래고 결속을 다지는 효과도 있다.

주변국 협박하는 자해공갈 수법

뾰족한 대처 방안이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스스로의 몸에 칼 긋는 일을 막기란 쉽지 않은 탓이다. 결국 칼을 뺏거나 사거나 혹은 처벌하거나 설득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런데 뺏자니 무력충돌이 염려되고, 사자니 명분이 약하다. 제재라는 처벌도 워낙 혼자 살아온 경제라 별 의미가 없다. 자해도 한두 번이지 결국은 명을 당기는 행위이며 성실히 노력해 돈 버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설득해 봐야 소용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가만있으면 추가 핵실험이라는 또 한 번의 자해를 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지는 우리와 유관국 정부의 선택과 공조에 달려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일면적(一面的)이 아니라 다면적(多面的)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칼을 뺏더라도 한편으론 설득 노력이 있어야 하고 제재를 하더라도 칼을 뺏을지 살지에 대한 전략적 고민도 병행해야 한다.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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