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태훈]투혼의 야구, 이제 인프라를 갖춰야

  • 입력 2009년 3월 26일 02시 58분


“나는 김태균(한화)!” “그럼 나는 봉중근(LG) 할래.”

요즘 초등학교에서 야구하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띈다. 아이들은 흙바닥에 축구 골대 2개뿐인 운동장에서 구역을 나눠 삼삼오오로 모여 야구를 한다. 포수마스크도, 심판도 없다. 글러브 몇 개에 알루미늄 방망이 한 개가 전부다. 하지만 아이들은 공을 던지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게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한 초등학생은 “야구가 재밌어요. 멋있잖아요”라고 말했다.

한국이 24일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하면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한국은 결승에서 일본과 10회 연장 혈투를 벌였지만 아쉽게 3-5로 졌다. 임창용(야쿠르트)은 3-3으로 맞선 10회초 2사 2, 3루에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와 정면 승부를 하다 2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첫 우승의 꿈은 깨졌다.

2점 차 패배는 엄연한 한일 야구의 수준 차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국제야구연맹(IBAF)이 25일 발표한 세계랭킹에서 ‘아마 최강’ 쿠바에 이어 2위에 올랐다. WBC 우승팀 일본(3위)과 야구 종가 미국(4위)을 앞섰다. 하지만 야구 인프라는 후진국 수준이다.

미국과 일본은 돔구장을 8개, 6개씩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돔구장이 없다. 건설비만 3000억∼5000억 원, 복합문화시설로 만들려면 1조 원 가까운 거금이 드는 게 걸림돌이다.

한국 야구의 젖줄인 아마추어야구도 해마다 팀이 줄고 있다. 제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팀은 51개교에 불과하다. 일본 고교팀은 4000개에 이른다. 이런 여건을 감안했을 때 한국이 WBC에서 일본과 다섯 차례 맞붙어 2승 3패로 선전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이끈 김경문 감독(두산)은 청와대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국도 이제 돔구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쾌한 답변은 없었다.

한국이 WBC에서 준우승하자 정부도 야구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일본 도쿄돔을 둘러본 뒤 “유영구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와 야구계의 숙원인 돔구장 건립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대표팀은 열악한 환경을 딛고 잘 싸웠다. 2013년 제3회 WBC 대회에서도 올해처럼 감동의 드라마를 보여주길 바란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야구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절실하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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