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서정보]앞뒤 바뀐 ‘신문사 지원’

  • 입력 2009년 3월 25일 02시 57분


요즘 신문업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그치지 않는다. 한 일간지의 부장급 기자가 지난달 월급으로 기본급의 50%만 받았는데 그 액수가 100만 원도 안 된다, 다른 일간지는 새 윤전기를 도입했다가 환율 변동으로 거액의 환차손이 우려된다는 등 안 좋은 얘기가 많다. 경기 불황으로 다른 업종과 마찬가지로 신문업계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일부 신문사의 사정이 더 악화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23일 토론회를 열어 올해 신문발전위원회(신발위) 기금과 추경예산에서 3800억 원을 조성해 구독료 인쇄비 명목으로 신문사에 직접 지원하고 내년에 2조 원의 기금을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신학림 신발위원(전 언론노조위원장)을 비롯해 한겨레 경향신문 등은 환영의 뜻을 표했다. 이들은 이 같은 지원만이 붕괴 직전의 신문사를 살리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최 의원의 계획대로라면 올해에만 전국 101개 신문사의 지난해 매출 1조7000억 원의 22%가량이 신문업계에 풀린다. 여기에 2조 원의 기금을 만들면 신문업이라는 특정 업계에 유례없이 ‘풍족한 공돈’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당장 사정이 급하다고 정부에 손을 벌려 개별 신문사에 대한 직접 지원을 서둘러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지는 따져봐야 한다.

언론학계에선 정부의 신문사 직접 지원은 여론 왜곡을 부를 여지가 많다고 지적한다. 한 언론학자는 “보조금 형식으로 개별 신문사를 지원하면 지원하는 쪽이 선호하는 견해나 선호한다고 여겨지는 견해를 더 많이 보도하게 돼 여론의 왜곡 현상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여론시장 관여는 가급적 없어야 하고 설사 관여하더라도 최소한의 범위에 그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신발위를 만들어 개별 언론사를 이런저런 기준으로 지원했다. 2006년 이후 지원받은 언론사를 보면 한겨레 경향신문을 비롯해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데일리서프라이즈 참세상 민중의소리 등 이른바 ‘친여 친노 매체’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과연 세금을 신문사에 주는 데 국민이 흔쾌히 동의할지 의문이다.

최 의원 등이 밝히는 지원 방식은 구독료 보조, 영세사업자에 대한 인쇄비 지원, 가동하지 않는 윤전기의 정부 구매 등 일회성 경비가 많다.

신문의 중요한 기능은 국민의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감시하는 것이다. 그동안 신문은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정부의 방만 행정이나 비리에 대해 엄정하게 비판해왔다. 신문이 정부에 먼저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면 세금 낭비 등에 대한 비판의 날이 무뎌질 수밖에 없다.

최 의원 측은 일단 추경예산 사용에 ‘통 크게’ 여야가 합의한 뒤 지원의 투명성이나 기준 등을 세우자고 한다. 공적 재원의 사용은 먼저 필요한 항목을 고르고 그 기준을 세운 뒤 적절한 액수를 따지는 것이 순서다. 신문사 사정이 급하다고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수천억 원을 일단 확보해놓고 나중에 지원 기준이나 투명성을 따지겠다는 자세는 국민이 납득하기 힘들다.

더욱이 구독료 인쇄비 등 직접 지원은 반짝 효과에 불과해 퍼주기식 예산 낭비 가능성이 크다. 신발위가 2006년부터 200억 원 가까이 각 언론사에 지원했지만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단 얘기보다는 나눠주기에 그쳤다는 지적이 많았다.

결국 세금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신문사를 지원하자는 것은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신문 살리기라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정보 문화부 차장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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