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명자]국가에너지, 北 변화시키기에 모을 수 없나

  • 입력 2009년 3월 11일 03시 00분


20세기 문명사의 가장 비극적 사건의 하나는 원자탄 개발이다. 1914년 영국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그의 작품 ‘해방된 세계’에서 핵융합 반응으로 에너지 궁핍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그렸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는 핵분열 반응에 의한 핵폭탄부터 만들어냈다. 21세기 이 사건은 그 위협의 한복판에 한반도를 올려놓고 있다.

원자탄의 이론적 근거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방정식 E=mc²이다. 핵반응에서의 극미한 질량 변화가 광속의 제곱에 비례하는 엄청난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이 이론은 1938년 독일의 한과 슈트라스만이 U-235(우라늄235) 연쇄반응 실험을 하면서 현실화하기 시작한다. 나치 독일로부터 망명길에 오른 유럽 과학자들은 히틀러가 먼저 개발하느니, 서방측이 만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중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는 1939년 이미 미국에서 명성을 얻고 있던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에 서명하도록 설득한다. 미국은 그해 10월 우라늄위원회를 설치하지만 당시는 천연우라늄에서 U-235를 분리하는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이 문제를 푼 것은 영국으로 망명한 독일 과학자들로, 영국 모드위원회는 원폭 연구의 선두 주자가 된다. 그러나 독일발(發) 로켓의 사정거리에 있는 영국에 원폭 공장을 세운다는 건 자폭행위나 다름없었다. 결국 영국의 기술보고서는 미국으로 넘겨지고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을 계기로 개발이 본격화된다.

핵무기는 평화위협 ‘공공의 적’

1942년 맨해튼계획은 ‘기술과 과학행정의 서커스’였다.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수천 명의 연구개발 주역과 수만 명의 생산인력이 미국 전역을 무대로 펼친 미증유의 산학연관군 합작품이었다. 과학기술행정을 총괄한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3000명의 과학자가 집결한 뉴멕시코 주 외딴 ‘원자도시’에서 폭탄설계의 이론연구와 물성, 폭파방식 등 실험연구에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불확실성투성이였던 이 계획은 1945년 7월 실험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력을 증명한다.

미국 안팎의 과학계는 1945년 5월 독일의 패망과 함께 원자탄 반대운동으로 돌아선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해 8월 6일과 9일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우라늄 폭탄과 플루토늄 폭탄이 투하된다. 오펜하이머는 “원폭 투하로 과학자들은 죄악이 무엇인가를 알았다”고 했고 아인슈타인은 “원자탄 사용에는 이상스러운 불가피성이 있었던 것”이라고 술회했다.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후 원자력 관리체제는 국제협상의 핵심에 놓였다. 표면적으로는 평화적 이용의 명분으로 잠수함 개발과 원전사업이 진행됐으나 실제론 전후 냉전체제와 맞물려 핵 군비 경쟁이 더욱 치열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트루먼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다는 정보는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른바 ‘공포의 균형’ 시대에 핵무기는 ‘사용할 수 없는 무기’란 별명에도 불구하고 소형화, 정밀화, 고성능화로 치달았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의 핵무기 일방 감축 선언에 화답하는 고르바초프의 단거리 핵무기 폐기 선언이 있었으나 탈냉전과 상관없이 핵 위협은 여전히 국제평화를 위협하는 ‘공공의 적’으로 남아 있다. 지구를 몇 차례나 날려버릴 수 있는 핵폭탄을 안고 국제사회가 택할 수 있는 현실적 정책수단은 핵물질의 확산을 막고 핵무기 개발을 제어한다는 원자력의 평화적 관리뿐이다.

이러한 국제질서와 끝없는 줄다리기를 해 온 북한 핵의 여정을 돌아보면 앞날이 답답하다. 남북한 양자 문제이면서도 복잡한 구도의 다자관계로 얽혀 있고 풀리는 듯하다가는 다시 원점에서 맴돌기도 한다. 요컨대 북한의 노림수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남남갈등으로 국론 분열돼서야

지구상에서 한국만큼 한반도 평화를 열망하는 나라는 없다. 이 때문에 공들여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북핵과 미사일 위협은 해소는커녕 꼬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을 둘러싼 남남갈등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다자구도에서 한국의 위상이 약화된다면 너무 큰 손실이다. “북한이 조금이라도 변화를 보여야 진전이 가능할 텐데 답답하다”던 크리스토퍼 힐의 심정이 이해된다. 협상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이 국제기준 쪽으로 변화해야 하고 그 일에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내부 갈등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북한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 투입될 수 있는 길은 진정 없는 것일까.

김명자 객원논설위원·KAIST초빙특훈교수 mjkim@gk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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