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혜진]비싼 수업료 치르고 퇴장하는 ‘분양가 상한제’

  • 입력 2009년 2월 18일 02시 58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시행 1년여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정부가 부동산경기 활성화 대책의 하나로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오르내림이 결정된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는 땅값에 건축비 등을 더해 분양원가를 계산하고 여기에 건설업체의 수익을 일정 정도 감안해 가격 상한선을 묶어 놓았다. 분양가 상승의 고삐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시장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2007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건설업체의 건축비 부풀리기를 바로잡고 분양가를 낮춰 아파트 가격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기존 분양가보다 20%가량 싸게 인기 브랜드의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홍보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장은 정부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우선 아파트 공급이 크게 줄었다. 입지가 좋은 땅은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더구나 건설업체들은 2004, 2005년에 고가의 도심지 땅을 사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분양가 상한제가 인정해주는 택지 감정가는 토지시장의 실제 가격을 크게 밑돌았다. 분양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땅값을 충당할 길이 없자 건설업체들은 사업을 포기했다.

지난해 분양된 주택은 19만9215채로 2007년보다 21% 줄었다. 올 1월 분양한 아파트는 2222채로 2004년 1월 이후 가장 적었다. 지금은 경기침체로 공급 물량 감소의 부작용이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2, 3년 후 부동산 시장의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실제로 외환위기 때 공급이 부족하자 이후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분양가 상한제를 도입한 2007년은 아파트 수요 감소로 지방부터 미분양이 쌓이던 때였다. 여기에 건설업체들이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시행 직전 3개월 동안에만 20만 채가 넘는 아파트를 쏟아냈다. 요즘 건설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미분양 아파트 중엔 이때 공급된 물량이 많다.

결국 분양가 상한제는 공급을 줄여 가격 불안 요소를 잉태했고 미분양을 늘려 건설업체의 유동성을 악화시켰다. ‘조금만 기다리면 민간택지에서 싼 아파트가 나온다’고 했던 정부를 믿고 내 집 마련을 미뤘던 무주택자들은 또 한번 배신당한 셈이 됐다.

분양가 상한제는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평범한 사실을 깨닫는 데 지불한 수업료는 너무 비쌌다.

정혜진 경제부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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