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박경미]외계인에 보낸 ‘이진법 메시지’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삶이 무료해지거나 사소한 일상사에 마음을 쓰고 싶지 않을 때 이를 치유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우주와 같은 거시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고 태양계는 광대한 은하계의 극히 일부분이고 그런 은하계가 수도 없이 많다면 도대체 우주는 얼마나 넓을까? 그런 우주에 대해 경외감을 가져 보고, 많고 많은 별 중에 우리와 비슷한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하나쯤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다 보면 현재 집착하고 있는 눈앞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초연해질 수 있다.

지구인이 외계인과 교신하려는 시도 중의 하나는 1974년 푸에르토리코에 위치한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은하계의 구상성단 M13에 마이크로파로 발사한 아레시보 메시지이다. 구상성단 M13과 같이 오래된 별을 택한 이유는 메시지를 해독할 정도의 지능을 갖추려면 생명체가 오랜 시간 동안 진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인류가 이룬 정신문명의 핵심이면서 지능을 가진 외계인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이진법으로 표현했다.

아레시보 메시지로 왜 이진법을 선택했을까?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십진법은 인간의 손가락이 10개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다분히 임의적인 선택이다. 예를 들어 어떤 행성에 손가락이 7개인 외계인이 산다면 그들은 칠진법을 당연시하며 사용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이진법은 0과 1, 있음과 없음과 같이 상반된 상태를 나타내는 두 가지 기호로 이루어졌으므로 외계에서 혹시 다른 진법을 사용해도 이진법을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

아레시보 메시지는 1679개의 0 또는 1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1679를 택한 이유는 1679는 1과 자기 자신 이외의 약수로 23과 73밖에 갖지 않기 때문이다. 즉, 1679는 23과 73의 곱으로만 유일하게 소인수분해 된다. 1679개의 0 또는 1을 그냥 일렬로 늘어놓으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지만 73행 23열로 배열하면 지구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메시지의 내용 중에는 이진법 자체로 알 수 있는 경우도 있고 0과 1을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면 모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메시지의 최상단에는 1부터 10까지의 수가 이진법의 수로 표시된다. 예를 들어 2는 이진법의 수 10으로, 9의 경우는 이진법의 수 1001로 나타낸다. 수 다음에 오는 것은 생명이 존재하는 데 필수적인 다섯 가지 원소의 원자번호이다. 우주는 공통적인 원소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도 역시 공통이므로 외계에서 양성자의 수를 중요시한다면 우리와 동일한 원소주기율표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계인도 수소 산소 탄소 질소 인을 각각의 원자번호인 1, 6, 7, 8, 15로 인식하고 이를 이진법으로 표현하면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어 염색체에 있는 염기쌍의 개수와 DNA 유전정보를 구성하는 4가지 염기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시토신(C)의 화학식과 그들의 결합 방식을 이진법으로 표현하고 DNA 이중나선 구조와 인간의 모습을 0과 1을 통해 형상화했다. 지구에 사는 인간의 대표적인 신장으로는 이 메시지를 구상한 프랭크 드레이크의 키를 선택하고 두 수의 곱을 통해 176.4cm로 정했다. 그리고 1974년 당시 세계의 인구인 43억 명을 알려주기 위해 이진법의 수로 4,292,853,750을 표현하고 메시지의 하단에는 태양계의 행성과 아레시보 망원경의 형태를 나타냈다.

광활한 우주의 한 점인 지구, 그 지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하루하루 숨 가쁘게 살지만 가끔씩 태양계 은하계 우주로 생각을 펼쳐 보는 일은 정신건강상 괜찮은 시도 같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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