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 여당, 철거민 속사정 알고나 있었나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정부와 한나라당, 서울시가 용산 참사 사흘 만인 어제 국회에서 재개발 철거민 보호 대책을 논의했다. 당정은 재개발 지역에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세입자의 주거 이전비용을 가족 수에 따라 차등 지급하거나 주변 시세에 보상비를 연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정도 대책으로 재개발 갈등이 해소될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대형 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뒷북을 치는 우리 정치와 행정의 현주소가 부끄럽다.

도시 재개발로 인한 건물주와 세입자 및 철거민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에 사고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재개발 지역의 갈등이 당정의 관심이나 끌었겠나 싶다. 이번 참사는 평소 민생 현장에 소홀한 한나라당의 웰빙 정치, 웰빙 행정과 무관치 않다. 뉴타운 공약으로 지난 총선에서 쏠쏠한 재미를 본 한나라당의 수도권 의원들 가운데 재개발 현장을 찾아가 중재 노력을 했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관련 법률 개정안이라도 낸 의원이 있는지 묻고 싶다.

그동안 도심 재개발 사업을 통해 토지와 건물 소유자는 상당한 이득을 봤지만 영세 상인과 세입자들은 생활 터전을 잃거나 도시 외곽으로 내몰려 생존을 위협받았다. 재개발 용역업체들의 폭력이 갈등을 키우고 철거민들의 폭력 저항을 조장한 측면도 있다. 철거민 문제가 민사상의 단순한 분쟁에서 인권 차원으로 악화된 이유다.

이번에 참사가 빚어진 용산4구역 외에도 서울에는 재개발 지역의 갈등이 곳곳에 널려 있다. 2011년까지 서울의 26개 뉴타운 지구에서 철거될 예정인 주택만 12만 채가 넘는다. 오세훈 시장 취임 후 지정된 재개발 구역도 63곳에 이른다. 서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 주거환경 개선 사업이 벌어져 세들 주택을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 투쟁을 촉발하고 있다. 재개발과 뉴타운 사업에 대한 속도 조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의사당 폭력과 해외 원정 골프로 수세에 몰렸던 민주당은 이번 참사를 반전 기회로 삼으려는 듯하지만 자성부터 해야 옳다. 자신들이 집권했던 10년 동안 철거민 대책을 제대로 세웠더라면 용산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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